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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삶은 문화와 에티켓으로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5년 11월 17일(화)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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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문무학 문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품위 있는 삶은 누구나 동경하는 삶이다. 누구나 동경하는 그 삶은 권력이 있거나 돈 많은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품위를 권력과 돈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권력가와 갑부들이 다 가져가거나 사 버리고 일반인들에게 돌아갈 게 없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그런데 그게 아니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 품위를 유지하는 일이 그리 만만치가 않다. 상류층 사람들이나 권력자들은 품위 유지비로 지출하는 돈이 없지도 않지만, 그래도 품위는 역시 품위가 있어 돈 앞에서도 권력 앞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다. 돈과 권력으로는 품위를 드러내지 못한다. 품위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가장 힘써 해야 할 일은 문화 예술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전시장에서, 공연장에서, 발달한 기계 문명이 싸늘하게 식혀버린 우리네 가슴을 데워야 하는 것이다.
싸늘해진 가슴을 덥히기 위해서 찾아가는 전시장에도 지켜야 할 에티켓이 있다. 그런 에티켓을 지키지 않고 전시장에 드나드는 것은 그야말로 품위 없는 일이다. 전시장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의 근본은 전시된 작품에 대해 경건한 마음을 갖는 것이 첫째다. 전시된 모든 작품에는 작가의 세상을 향한 메시지가 들어있고, 작가의 열정과 땀방울이 묻어 있다.
그런 작품 앞에서 구둣발로 작품의 어느 부분을 가리키는 사람도 있고, 무턱 대고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 심지어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며 보는 사람도 없지 않다. 이건 품위 이전의 에티켓의 문제다. 에티켓은 누구라도 지켜야 하는 법에 가까운 것이고, 품위는 에티켓을 넘어서 있다. 작품 앞에서 경건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작품 만나는 것을 작가를 만나는 일과 같이 생각하면 좋다.
전시장 가는 에티켓으론, 전시 시간은 대체로 폐관 한 시간 전까지 입장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시간 전에 가야 한다. 시간을 지키지 않고 가서 관리자들을 애 먹이는 일은 에티켓에 어긋난다. 복장은 편해도 되지만 신발은 소리 나지 않는 것이 좋다. 슬리퍼를 끌어서도 안 된다. 멋쟁이 아가씨가 하이힐을 신고 와서 똑 똑 소리를 내는 것도 전시장에선 절대로 멋이 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감상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전시의 관람 순서는 특별히 없다. 작품을 감상하는 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고 싶은 대로 돌아봐도 무방하다. 관람 동선이 있으면 그걸 따라 하는 게 무난하다. 우선 자유롭게 한 바퀴 돌아보고 관심 있는 작품을 다시 한 번 보는 게 좋다. 1~2분간 서서 전체와 부분을 살펴본다. 전시장에 큐레이터(Curator)나 도슨트(Docent)가 있다면 그들의 도움을 받아도 좋다. 큐레이터는 전시 기획 담당자고, 도슨트는 전시물을 설명해주는 자원봉사자다. 작품에 대한 배경을 알아두면 작품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그림의 경우, 첫째, 화가가 무엇을 그렸는지 본다. 추상화의 경우 제목을 보고 유추할 수도 있다. 둘째. 무엇을 그렸는가를 알았다면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화면을 어떻게 구성했는지 본다. 셋째. 표현 기법을 본다. 작가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이 있다. 이 정도의 상식만 가지고 전시장에 가면 당당하게 전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 가서 작품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웬 만큼의 여유가 생기면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 한 점 소유할 수 있으면 참 좋다. 그것이 작가들을 후원하는 길이기도 하다. 아직 그럴 형편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날을 꿈만 꾸고 살아도 품위를 다치는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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