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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사업은 보본의무이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5년 10월 01일(목)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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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김영호 교육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위선사업은 자손들이 생세에 이룩했던 조상의 사적을 현창하기 위하여 세미나를 하거나 제실을 짓거나 신도비, 효자각, 충신각, 열녀각 등을 세워서 위민 보국했던 충의와 효의 및 수절의 단정을 계승하여 올바를 삶의 가치를 각성토록 하는 사업이며, 충절을 다하고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단죄된 조상에 대한 부정적 기록을 바로잡기 위해 그 증빙자료를 찾아 현세에 널리 알려 설원하는 일이라 하겠다.
지난달 9월 4일에 대구 향교에서 개최된 「기적의 배 12척」이란 실록소설 출판 기념회는 후자의 한 예이고 그달 11일 안동시에 소재하는 한국국학진흥원 대강당에서 개최된 '입암 탄신 500주년 학술강연회'는 전자의 예라 하겠다.
「기적의 배 12척」이란 책은 칠천량 해전에서 12척의 배를 기적적으로 살려 조선을 구한 배설장군의 역사적 진실을 증언하는 실록소설로서 독자로 하여금 영화 <명랑>의 허위를 인식하고 배설장군의 참모습을 만나는데 도움이 되는 인간적, 역사적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진심어린 소망의 뜻을 담은 소설이라고 작가는 전한다.
배설장군은 1551년 성산배씨 후예로 태어나서 진주목사, 선산부사 겸 금오산성 별장, 경상우수사를 역임하고, 모함에 의해 1599년 48세로 억울하게 참형을 당했다고 한다. 이순신, 김성일, 신립, 김덕령 등이 모두 죽고 나서 선조와 조정은 전쟁의 피해에 대한 백성들의 원성이 자신들에게 돌아오지 않도록 패전 책임을 경상우수사 배설에게 덮어 씌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과 6년 후 선조와 조정은 배설장군에게 임란극복에 세운 큰 공적을 인정하고 선무원종1등공신으로 책봉하여 신원하였으며, 1610과 1873년에는 호조참판, 병조판서로 각각 추증하였다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배설은 부상진에서 맹활약하여 왜장 흑전구침의 목을 벤 공에 의해 합천군수에 임명되었다.
그 후 6만 명의 장졸과 백성들이 죽은 2차 전투로 폐허가 된 진주성에 목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펼치다가 조정의 명으로 경상우수사로 옮기에 되었지만, 백성들이 앞을 막는 바람에 두 달 후에 늦게 부임했다는 것이며, 그 후 진주 백성들은 선정을 기려 거사비를 세웠다고 한다.
특히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의 지휘 아래 조선 수군은 판옥선 8척만 남을 정도로 대패했는데 배설 장군 혼자만이 8척을 수습했고, 그 후 다시 4척을 더 보태어 이순신장군에게 인계하여 "아직도 신에게는 배가 12척이 있사옵니다"라는 12척은 배설장군이 넘겨 준 것이라고 한다. 또한 배설 장군은 칠천량에서 후퇴했을 때 한산도로 와서 백성들을 무사히 대피시키는 등 작전 지시를 완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영화 <명랑>에서 잘못 연출하여 배설 장군의 충절에 흠짐을 내었다고 그 날 출판기념회에서 많은 후손들이 분노하는 모습을 보고 약 500년 전의 조상의 보국충절을 지키는 자손들의 단합된 위선지심에 감명과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 후 11일 한국국학진흥원 대강당에서 개최된 '입암 탄신 500주년 학술강연회'는 조상의 유업을 현창하는 장이었다. 강당 안팎을 가득 매운 참석자는 입암 류중영이 가정교육을 어떻게 잘하여 아들 유성룡을 숭앙 받는 인재로 길렀으며, 후학들에게는 어떤 교육적 신념으로 가르쳤는가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현세인에게 올바른 삶의 지표를 제시하는 조상현창의 의미 깊은 강연회였다.
조상의 음덕으로 우뚝한 사회적 지위를 차지한 후손이라면 위선사업에 모범을 보여야 함은 마땅한데 그렇지 못한 예외를 볼 때 마음이 참담해진다. 더운 날씨였지만 한복을 차려입고 안내하는 하회마을 풍산류씨 후손들의 옷 빛에서 위선사업은 자손들의 보본임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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