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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탄에 감도는 역사적 교훈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5년 09월 20일(일)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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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박정웅 행정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막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디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가느냐" 윤심덕의 '사의 찬미(死의 讚美)' 첫 소절이다. 암울한 시대에 정신적 수난을 겪으면서 한 시대를 살아가는 민족적 애환의 심정을 노래한 것일까. 일본에서 관부연락선으로 귀국하면서 유부남 애인인 극작가 김우진과 선상에서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한 애환이 담긴 노랫말이다.
현해탄은 지리적으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는 다른 의미가 있다. 즉 대마도를 중심으로 한반도와 대마도사이는 대한해협이며, 대마도와 일본의 이기섬 사이가 현해탄이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대륙 침약의 야욕으로 해협을 확대 해석하여 대한해협까지 포함하여 현해탄으로 부르고 있다.
대마도는 대한해협에 접해 있는 섬이지만 섬 전체가 산악지대인바 사람이 생존하기에는 너무 척박한 자연환경이다. 이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가장 가까운 한반도 남쪽 해변이나 중국의 해안지방에 대해 약탈과 노략질을 삶의 수단으로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사실 대마도는 신라시대에는 신라의 세력하에서 삶을 이어 가는 처지였고, 려몽(麗蒙) 연합군에 의한 2차례(AD1274년과 1275년)에 걸쳐서 왜구를 정복하기 위한 전쟁의 전초기지로서 당시의 려몽 군사 전문가들이 기상(氣象)에 대한 지식부족으로 2차례 모두 태풍의 계절인 10월에 전쟁을 감행하여 전투로 인한 패배가 아닌 계절풍인 태풍에서 비롯되는 기후적 조건으로 전쟁을 감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왜구들은 려몽연합군을 물리친 것은 하늘의 가호에 의한 신풍(神風)-가미가제-의 조화였다고 계절풍인 태풍을 미화하고 있다.
실은 이시기에 왜국의 왕은 려몽전쟁의 두려움을 신에게 기도하여 제압하겠다고 히로시마 앞의 내해에 있는 오미시마(大三道)에서 기도로 신의 조화를 불러 일으켜 왕의 권위가 신을 움직인다는 주술력을 과시하는 기도를 통해서 신의 바람을 일으킨다고 추겨 세우고 있다. 지금도 일본 내해(內海)의 오미시마에서는 신풍에 대한 고마움을 기도로 매일 새벽 주민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현지에서 목격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근대에 와서 우리나라는 일본이 명치유신으로 국력을 키우는데 반하여 근대사를 안이하게 이어오는 가운데 국가의 존위를 준비하지 못하고 구태에 매달려서 태평하게 지내 오는 반면에 일본의 국력 팽창은 자국 내에 머물지 않고 강화된 군사력을 바탕으로 20세기 초의 군사대국으로 조선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까지 군사력으로 제압하고 급기야는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되었고, 조선왕조는 대한제국으로 치욕적인 침탈의 제물이 되어 근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역사적 치욕사를 기록하게 되었다. 대마도는 조선 세종 때에 이종무에 의하여 완전히 정복 되었지만 대마도의 열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도리어 삼포(三浦)를 개방하여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기도 한 바가 있다.
특히 대한제국 말기의 고종황제의 딸인 덕혜옹주를 대마도주인 다케유끼와의 정략결혼으로 시집보내어 살게 한 족적이 '이왕가(李王家) 결혼 봉축기념비'가 지금도 버젓이 유적지에 서 있다. 여기서 주목할 바는 이왕조(李王朝)가 아닌 왕가(王家)라는 복속적인 말이라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1906년 구한말의 애국지사 면암 최익현은 볼모로 잡혀가서 왜구의 음식을 거절하여 아사한 흔적까지 그곳을 찾는 한국인에게는 왜구에 대한 울분을 삼키게 함은 경상도 남해안에서 해협을 건너 바라보이는 대마도를 보면서 그 때의 역사적 치욕을 미래의 국가 경쟁력의 힘의 바탕이 되기를 마음속에 되새겨보는 정신적 교훈으로 현해탄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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