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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교(鬼橋)를 재현하자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5년 09월 17일(목)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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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김영호 교육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경주를 신라의 도읍으로 정한 것은 아마도 서천, 남천, 북천이라는 강이 유유히 흐르기 때문에서가 아닐까. 가뭄이 심해 다른 지역에는 하천이 말라 흐름이 멈출 때도 고갈되지 않고 흐름을 과시하면서 경주시민들의 생명을 지켜주었으니 단순한 하천이 아니라 보천(寶川)이 되었던 것이다.
사라호 태풍이 영남지방을 강타하여 수란(水亂)이 났을 때는 이 하천이 범람하여 서천다리가 잠길듯하여 유실 위험을 받았지만 그 후로는 특별한 일천(溢川)의 흐름이 없어서 제방과 강바닥에 자연생장의 잡초가 초원을 이루었다.
모기가 집단서식을 하여 뇌염이 유행하는 때는 불편을 주었으나, 그래도 야생초가 고운 꽃을 피워서 초원의 빛이 되어 장폭의 풍경화를 그려주었는데, 이 천변이 정비가 되어 야생화의 군락지는 사라지고 견고하게 축조된 제방과 산책로, 자전거길, 주차장 등이 생겨 포장되어서 서천 둔치는 시민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새문화의 발상지로 변하고 있다.
요즈음은 서천과 남천이 만나는 곳까지 강변에 광대한 체육 경기장을 만들고 있어서 머릿속에 또 다른 그림을 그려보게 되었다. 완공을 위해 공사를 맡은 업체에서 인부와 장비를 동원하여 바쁘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모두들 고맙게 여긴다. 공원이 완성되면 산비탈이나 들판에 조성한 공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천혜의 배경을 담은 아름다운 강변공원이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그것은 서쪽에는 선도산의 미려한 수봉에서 아미타 삼존불이 내려다보며 지켜주고, 산 아래에 있는 신라 태종무열왕릉과 고분, 그 동북쪽에는 법흥왕릉, 진흥왕릉, 진지왕릉, 문성왕릉, 서악서원 등이 원경으로 자리하면서 남쪽에는 남산이 다양한 모습으로 닥아 오고 또한 오릉의 솔숲이 일경을 첨가하여 조화로운 풍경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서천 강변도로가 서천을 따라 죽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새화랑유치원을 조금 지나면 동쪽으로 직각회전을 하여 돌아가게 되어서 차량소통에 많은 불편을 주었는데 요즈음 직선화 공사를 하고 있어서 완공이 무척 기다려진다.
공사현장에 가보니 이 길이 완공되어 차량이 다닌다고 하더라도 직진하지 못하고 결국 금성로에 합치게 되어 피할 수 없는 병목현상으로 소통과 안전이 문제시 될 것 같다. 그래서 강변도로를 달리는 차량이 고속도로 톨게이트까지 시원하게 직진할 수 있도록 서천과 남천이 만나는 지점에 다리를 건설했으면 좋을 듯하다. 특히 이 부근은 신라의 고담이 내려오는 곳이다. 폐위되어 훙(薨)한 진지왕의 현신(現身)이 남편과 사별한 도화녀와 야밤에 합방하여 낳은 비형랑이 진평왕의 명에 의해 하루 밤에 귀신들을 동원해서 다리를 놓았던 곳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진지왕이 사랑부의 서녀 도화랑이 아름다워 궁중에 불러 간통하려고 하니, 도화녀는 '여지소수(女之所守)는 불사이부(不事二夫)라' "여자가 지켜야 할 바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남편이 있는 데 다른 사람에게 가는 것은 만승의 위엄으로도 끝내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목숨을 걸고 정조를 지킨 설화를 전해주고 있다.
귀신들이 돌을 다듬어 세운 기이한 다리이기에 '귀교'라 부른 것이며, 귀교가 있었던 답야(沓野)가 '귀들'이며, 오늘날도 오릉 서쪽 넓은 들을 '구드리', '구들'이라 부르고 거기의 논을 '구들 논'이라 함은 '귀들'에서 온 방언이라 생각된다. 두 흐름이 만나는 지점에 교통 소통을 위해 다리를 건설하여 '귀교'라 명명한다면 귀교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역사적인 설화가 또한 전해질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이 다리는 아마도 신라 여인이 왕권 앞에서도 정조를 목숨보다 소중이 여겼던 성적 신념을 각성할 수 있는 명소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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