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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된 '조선인 남방보국대' 그 원혼들의 통곡을 듣는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5년 08월 12일(수)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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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권영해 대한민국건국회장 (전 국방부 장관·전 안기부장) | | ⓒ 경북연합일보 | |
1945년 8월 15일은 내 나이 8살 되었던 여름날이었다. 개울에서 친구들과 물장난을 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면사무소 (경북 문경군 동로면) 쪽에서 커다란 함성과 함께 꽹과리와 징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들었다. "해뱅이다!", "만세!" 라고 외치는 소리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나는 '해뱅 (해방의 경상도 사투리)은 무엇이고 만세는 또 무엇인가?' 하여 부리나케 집으로 갔더니 어머니와 누님, 그리고 몇몇 동네 사람들이, "야야! 일본이 전쟁에 져서 망하고 이제 우리 조선은 해방이 되었단다!"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방학하기 며칠 전까지도 학교에서 대동아 전쟁에서 '우리 일본은 배이고꾸(米國)를 무찌르고 승리한다.'고 했는데 전쟁에서 졌다니 이제 큰일 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나의 8·15에 대한 기억이며 이는 일제가 어린 우리들을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 세뇌시킨 결과였다. 그 후 며칠 동안 곳곳에서 만세소리가 계속되는 가운데 면사무소와 관공서의 일장기가 불태워지고 가미다나(일본 신을 모시는 선반)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사람들의 발에 뭉개지는 가운데 주재소의 일본 순사들은 성난 군중에게 쫓겨 이리저리 도망하고 있었다. 이렇게 이 땅에서 매일 같이 해방을 축하하는 농악대의 풍악소리가 울리고 있을 때 중국 땅 하이난도 (海南島)에서는 일제에 의해 강제노역에 끌려갔던 소위 조선인 남방보국대 (南方報國隊) 중 살아남은 1천여 명의 우리 동포들은 일본의 패전과 조선의 해방 소식도 알지 못한 채 일본군들에 의해 칼과 곡괭이 그리고 몽둥이에 의해 잔혹하게 살육 당하고 있었다. "해방을 기뻐하는 징소리와 북소리가 그들에게는 살육의 신호소리가 되었단 말인가?...." 잔악한 일본군들은 그들이 총으로 조선인들을 학살 할 경우 그 사실이 주변의 중국인들에게 알려지고, 패전과 동시에 무기 사용이 금지된 상황에서 그들이 총을 사용한 사실이 훗날에라도 문제가 될 수 있으리라는 간교한 계산으로 이와 같이 잔인한 방법으로 살육을 감행했던 것이다.
|  | | | ↑↑ 일제에 의해 강제노역에 끌려갔던 소위 조선인 남방보국대(南方報國隊) 1천여 명이 중국 땅에서 잔혹하게 살육 당했다. 사진은 중국 하이난도 (海南島)에서 발견된 유골 흔적. | | ⓒ 경북연합일보 | |
남방 보국대 (南方報國隊) 란? 태평양전쟁이 중·후반으로 접어들어 미드웨이 해전에서 크게 패한 일본은 1943년께부터 미국의 반격이 일본 본토와 한반도 그리고 중국으로 이어질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일본의 오키나와, 한반도의 제주도와 부산 등 남해안 일대와 중국의 관문인 하이난도에 대대적인 동굴요새 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한 노동력이 필요하게 됐는데 이미 젊은 장정들은 징병으로 징용으로 모두 끌고 간 후라 남는 인력을 찾기 어렵게 되자 그들은 한반도 전역에 수감된 죄수들 중에서 노역을 감당할 만한 수감자들을 감언이설로 속여서 억지로 남방보국대(南方報國隊)에 지원하게 하였다. 그들이 제시한 조건은 수감자들이 노역에 단 6 개월만 참여해도 잔여 형기를 모두 면제해주고 노역에 대한 보수도 일본인 순사(순경)만큼 준다는 내용이었다. 이때 차출된 죄수들은 대부분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저항해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소위 불령선인(不逞鮮人), 즉 반일제 통치 성향의 인사들이었다고 하니 당초부터 일제가 이들을 청소(?)하려고 작정했다고 해도 무리한 추리는 아닐 것이다. 이렇게 차출해 끌고 간 인원은 약 2천여 명이었으나 해방이 될 때까지 그 중 절반 남짓한 1천여 명은 힘든 노역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고, 살아남은 1천여 명은 패전 사실을 숨긴 일본군들에 의해 잔혹한 방법으로 학살당했으니, 이들이 행한 반인륜적 범죄행위는 국제법상으로도 도저히 묵과 될 수 없는 중죄로서 반드시 그 실체가 규명되고 응징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국민 대부분이 이와 같은 통탄할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 정부 역시 그간 많은 시민단체들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러한 사실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다가 지난 2013년 우연한 기회에 이승복 소년 사건을 왜곡하고 유가족들을 폄훼한 무리들과 싸워 이를 바로잡은 영관 장교 연합회의 권오강 회장을 만나 노고를 격려하는 과정에서 뜻밖에 위 사실을 전해 듣게 됐고, 관련 자료들을 접하면서 놀라움과 울분을 누를 수 없었고 지금까지 2회에 걸쳐 현장을 직접 탐방하면서는 애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외에서 순국한 열사들의 유해는 단 한 구라도 대대적인 송환 작업을 통해 국내로 모셔오고 있으며, 같은 강제 징용자인 사할린 동포들도 유가족들이 유해 송환을 원할 경우 막대한 정부 예산을 들여 송환을 진행한다는데 이들의 억울한 죽음에는 진정 아무도 관심이 없단 말인가?... 이에 나는 (사)대한민국 건국회 회원들과 함께 해남도 원혼들의 영전에 조국의 독립과 대한민국의 건국을 고하고 매장된 현장과 일부 수습된 유골들이 그 곳 지방 정부의 개발계획에 의해 더 이상 훼손되기 전에 이를 보존하고 유골을 송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다시 한 번 그 억울하고 가슴 아픈 해남도 천인갱에 다녀왔다. 올해는 광복 70 주년이라고 정부와 여러 단체들이 갖가지 경축행사를 계획해 추진하고 있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자랑하며 노래하고 춤추는 크고 화려한 축제를 하기에 앞서, 불과 70여 년 전 나라가 힘이 없어 지켜주지 못했기에 강제로 이역만리 타국으로 끌려가 힘든 노역 끝에 조국 해방의 기쁜 소식도 알지 못한 채 잔인하게 학살당하고 암매장된 천여 명 동포들의 원혼을 위로하고, 이들의 유해라도 정중히 수습하는 것이 진정 해방 70 년과 대한민국 건국 67 년을 맞는 우리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제 우리는 진실로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기념하고, 무엇을 축하해야 할지를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다. 식민지에서 놓여난 것을 '해방'이라고 하지 않고 주권을 되찾았다고 '광복'이라고 한다면 조금은 자존심이 지켜지는 것인가? 그렇다면 진정한 광복은 대한민국의 주권을 새롭게 세운 건국과 함께 왔음을 깨닫고 명심해야 할 것이며, 축제를 즐기기에 앞서 옷깃을 여미고 선조들의 희생과 나라와 주권의 귀함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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