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 2026-08-07 03:26:20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전체기사
커뮤니티
공지사항
자유게시판
행사알림
회사알림
 
뉴스 > 기획/특집
무소속 의원 '과반 차지' 부터 집권여당 참패까지
한 눈에 보는 '경주 국회의원'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5년 07월 06일(월) 11:36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1948년 5월 10일 치러진 제1대 국회의원 총선부터 20세기 마지막 선거였던 2000년 5월 30일 치러진 제16대 총선까지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동시에 경주에서 선출된 역대 국회의원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1·2대 총선 : 무소속 의원이 과반을 차지하는 혼돈의 시기
광복 후 미군정의 감시 아래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실시해, 제1대 국회를 설립한다. 1대 국회를 흔히들 '제헌국회'라고 칭한다. 정당별 분포도를 보면 정당 중에선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이승만 지지파)가 54석으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고, 한국민주당이 29석, 대동청년단 12석, 조선민족청년당 6석, 대한독립촉성농민총동맹이 2석, 그 밖에 95석(무소속 84석 포함)이었다. 이때의 투표율은 75%정도로 기록되고 있다. 경주는 2석을 배정받았고, 경주와 영일 출신에 김철, 이석 씨가 당선됐다. 두 사람 모두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하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이었다.
제2대 총선은 의원정족수 210명에 반해, 무려 2천209명이 출마해, 평균 10.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러한 과열경쟁의 결과는 제1대 총선에 불참했던 남북 협상파의 참여와 대한민국을 수립한 이후 우후죽순처럼 결성된 정당의 정치적 과열로 풀이된다.
경주는 1대와 마찬가지로 2석이 배정됐고 무소속의 안용대 씨와 대한청년당의 이협우 씨가 당선됐다. 대한청년당은 이승만 대통령을 총재로 하는 준 국가기구적 성격의 청년단체였다.

◇3·4대 총선 : 정당공천제 최초 도입, 이승만이 이끄는 자유당 압승
제3대 총선은 전체 203석 중 경주에 2석을 배정했고 김철 씨와 이협우 씨가 당선됐다. 두 사람 모두 당시 세가 약했던 대한독립촉성국민회와 대한청년당을 버리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1958년 치러진 제4대 총선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민의원선거법에 따라 치러진 국회의원선거다. 1952년 7월과 1954년 11월 공포된 개정헌법에 따라 민의원(民議院)과 참의원(參議院)의 양원을 구성하려 했으나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미뤄져오다, 제3대 국회의원의 임기 만료와 때를 같이해 민의원선거법이 완성됐다. 전체의석은 233석 중 경주지역은 3석이 배정됐고 무소속의 안용대 씨와 이승만 대통령의 집권연장을 위해 만들어진 자유당 소속의 이협우 씨와 이종준 씨가 당선됐다.

◇5대 총선 : 대한민국 최초 양원제 도입했으나 군부정권이 강제로 해산시켜
1960년 7월 29일 실시된 제5대 총선을 통해 처음으로 참의원 선거가 열리고 양원의회가 구성된다. 1952년 제1차 헌법개정으로 민의원과 참의원의 양원제를 규정했지만, 3대와 4대 총선 모두 민의원 선거만 치러졌다. 그러나 제5대 총선은 민의원 233명과 참의원 58석을 뽑았다. 민의원과 참의원 모두 장면 총리가 이끄는 자유당이 과반정당으로 압승했다. 경주는 참의원 없이 민의원으로만 3명이 선출됐다. 일본 오사카고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의사 출신의 김종해 씨, 육군사관학교 7기 출신의 황환수 씨, 경성의학전문학교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의사 출신의 오정국 씨가 경주지역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특히 오정국 씨와 황환수 씨는 1955년 자유당의 사사오입개헌 사건을 계기로 반 이승만계 세력들이 모여 결성한 민주당 소속이었다. 김영삼과 김대중 전 대통령도 당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다. 제5대 국회는 1960년 8월부터 임기가 시작됐으나, 10개월도 못돼 5·16 군사정변으로 강제 해산된다.

◇6·7대 총선 : 의원 정족수 줄면서 경주 지역구 3석에서 1석으로 감소
1961년 5월부터 1963년 11월까지 대한민국 국회는 암흑의 시기였다. 1961년 5월 22일, 박정희 육군 소장이 이끄는 군부정권이 국회를 강제 해산시켰기 때문이다.
1962년 3월, 군부정권은 반대급부 정치인을 정리하려는 '구 정치인 정화법'을 발표하자 이에 반발한 윤보선 대통령이 사임한다. 그러자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행사한다. 박정희 의장은 같은 해 7월까지 공석인 국무총리급의 지위인 내각수반도 겸임하게 된다. 1963년, 박정희 의장은 군에 복귀한다는 이른바 혁명 공약을 번복하고, 강원도 철원 비행장에서 육군 대장으로 예편한 후 민주공화당에 입당해 제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
6대 총선은 군부의 '5·16' 정치 개입으로 민주당 정권이 붕괴된 뒤 주도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정치일정과 제도에 의해 치러진 선거였다. 군부세력에 의하여 새롭게 개정된 헌법에서는 권력 구조 형태를 내각 책임제에서 대통령 중심제로, 국회도 양원제에서 단원제로, 그리고 국회의원은 지역구와 전국구 제도를 도입한다. 지역구 131석, 전국국 44석으로 총 175석으로 제5대 양원을 합한 291석에 비해 무려 116석이 줄어든다. 경주지역은 4대와 5대를 걸쳐 3석을 받았던 지역구 국회의원 수가 1석으로 줄었다. 6대와 7대 국회의원 모두 중앙정보부 안보국장 출신의 이상무 씨가 당선됐다. 이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공화당 소속이었다.

◇8대 총선 :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에도 야당후보 당선
8대 총선이 치러진 1971년 5월 25일 경주는 일대 파란이 일어난다. 제1야당인 신민당 후보인 심봉섭 씨가 당선된 것이다. 2선의 정부여당 후보인 이상무 의원을 2% 차이로 제치고 국회에 입성한다.
경주지역의 야당후보 국회진출은 이른바 '진산파동'으로 신민당 내홍이 있던 터라, 시사하는 바가 컸다. 진산파동은 신민당 당수 유진산 의원이 1971년 5·25 8대 총선 후보등록 마감시간 3분 전에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영등포구 갑구 출마를 포기하고, 전국구(비례대표) 기호 1번 후보로 등록하자, 이에 반발한 신민당 내분 사태이다. 당시 신민당에는 대통령 후보 김대중과 이를 견제하는 김영삼 등도 있었다.

◇9~11대 총선 : 심봉섭에 이어 박권흠까지 신민당 후보 약진
9대에서 12대 총선까지 15년 동안 경주시와 당시 월성군(경주시 4개 읍과 8개 면), 청도군이 한 선거구로 통합된다.
9대 총선에는 민주공화당의 박숙현씨와 무소속의 이영표 씨가 당선됐지만, 10대에 들어서는 무소속의 이영표씨 대신 국제신문과 경향신문 기자 출신인 박권흠 씨가 당시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공천을 받아 신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정권을 잡은 전두환의 주도 아래, 1981년 3월 25일 11대 총선거가 실시된다. 의원 정수는 276인으로 10대 때보다 45명이 늘어났다. 선거는 지역구와 전국구로 구분해 실시됐는데,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전국 92개 선거구별로 다수 득표자 2인을 당선인으로 선출하는 중선거구제와 정당별 득표율 및 지역구 의석수에 따라 간접 선출하는 전국구 제도를 병행했다.
11대 국회의원 선거를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그들만의 리그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무미건조했다. 정부가 야당의 공천 및 당락을 결정하는 상황까지 이어지고 공명선거가 선거 내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될 정도였다.
10대 총선에서 신민당 소속으로 당선됐던 박권흠 씨 역시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정의당으로 당적을 바꿔 11대·12대 총선에 출마해 국회 입성에 성공한다.

◇12·13대 총선 : 지역구 4선 의원 김일윤 씨의 등장
12대 총선은 김일윤 씨가 초선으로 당선된 선거이기도 하다. 당시 김 씨의 당적은 민주한국당이었다.
민주한국당은 1980년 11월 정치활동금지 조치가 해제된 뒤 과거 신민당 출신 정치인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정당이다. 특히 민주한국당은 창당과 함께 치러진 11대 총선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전체 유효투표의 21.6%를 획득하면서 지역구와 전국구를 합쳐 81석을 확보, 제1야당으로서의 지위를 굳힌 것이다.
그러나 13대 총선이 되자, 김일윤 씨는 민주한국당의 당적을 버리고, 민주정의당의 공천을 받아 다시 국회에 입성한다. 민주한국당은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총 유효 투표의 2% 이상을 확보하지 못해 정당 등록이 취소됐다. 김 씨와 함께 당시 월성군도 민주정의당 소속 황윤기 씨가 당선됐다. 황 의원은 경북고와 고려대 법대를 나와 군산·안동·포항·경주시장 등을 역임한 행정통으로 알려져 있다.

◇14대 총선과 1994년 보궐선거 : 보궐선거에 야당후보인 이상두 씨 당선
14대 총선은 민주자유당의 서수종, 황윤기 씨가 당선됐다. 민주자유당은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존재했던 중도우파 정당이었다.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 김영삼과 김대중이 자신의 지지파인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의원들을 모아 만든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출신지인 충청권을 지지 기반으로 한 신민주공화당 등이 합당하여 만들어진 정당이다. 1990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추진한 3당 합당의 결과가 바로 민주자유당이다.
서수종 씨는 안기부 국장과 대통령 비설실장을 역임한 인물로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최양식 현 경주시장과 접전을 벌였던 박병훈 전 도의원이 서 씨의 비서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14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2년이 지난 1994년 5월 15일 서수종 의원의 사망으로 같은해 8월 치러진 보궐선거에 민주당 공천을 받은 이상두 씨가 당선됐다.
민주당은 3당 합당에 반대한 통일민주당 잔류파가 1991년 만든 정당으로 김대중과 포항 출신의 이기택 씨가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상두 의원은 이기택 대표의 특보출신이다.

◇15·16대 총선 : 집권여당의 참패
1996년 4월 치러진 15대 총선에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여당이었던 신한국당 소속 후보 백상승, 황윤기 씨가 참패하고 무소속의 김일윤, 임진출 씨가 당선됐다. 신한국당이 15대 총선에서 대한민국 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여당이 야당을 제치고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기였던 16대 총선은 경주시의 인구감소에 따라 기존 2석에서 1석으로 국회의원 수가 줄어들었다. 당시 무소속의 정종복 후보가 선전을 펼쳤지만 현재의 새누리당인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김일윤 후보가 당선됐다.
김장현 기자
경북연합일보 기자  
- Copyrights ⓒ경북연합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영덕 고래불역서 철도관광 축제 열린다
안동 월영열차·와룡빛터널 첫선
군위군의회 산경위 의정활동 돌입
경북소방, AI 기반 재난대응 강화…신고접수시스템 고도화
대구시, 제조기업 AX 전환 가속화 돕는다
경주시, 공공기관 유치전 돌입…원자력·에너지안전 분야 공략
청송사랑화폐 할인율 15%로 조정…안정 공급 강화
포항에 동북권 ICT콤플렉스 개소…AI·SW 인재 양성
어린이 문화체험 프로그램 확대 운영
민선 9기 경북도 투자유치특위 발족
최신뉴스
408억원 규모 ‘경북 혁신 벤처펀드’ 결성  
대구경북 말산업 특구 활성화 채찍질  
노지 밭작물 스마트 관수기술 도입  
안동시 착한가게 400호점 탄생  
예천군, 지역 환경리더 양성 나섰다  
영양군, 고추 재배 종합 평가회 개최  
영주서 대만 복싱 선수단 350명 전지훈련  
‘부적합 방폐물 반입, 케리(KAERI)’ 엄중 처벌해야  
달성군 찾아가는 장애인식개선 문화예술교육 호응  
군위군, 폭염 속 농작업 안전 지킨다  
대구서 조수미 세계무대 데뷔 40주년 기념공연 열린다  
볼거리 많은 대구과학관, 대구 인기 공공기관 1위  
냉방기기 사용·전력 수요 급증…화재위험경보 ‘심각’ 상향  
경북도, 민·관 합동 독도 연안·수중 정화행사 개최  
경북도, 자연재해저감 종합계획 추진 본격화  

신문사소개 편집규약 윤리강령 고충처리인제도 개인정보취급방침 제휴문의 광고문의 구독신청 기사제보 저작권 문의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경북연합일보 / 사업자등록번호: 505-81-82281/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화랑로 32 (성건동)
발행인.편집인: 정진욱 / mail: sp-11112222@daum.net / Tel: 054)777-7744 / Fax : 054)774-3311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가0003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진욱
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27,778
오늘 방문자 수 : 8,984
총 방문자 수 : 41,761,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