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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탄 뚫고 형산강 도하…포항탈환 선봉에 서다
호국영웅 <상>- 연제근 상사 기리며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5년 05월 31일(일) 17:01
ⓒ 경북연합일보

敵 기관총 진지 깨부수고
만20세 꽃다운 나이에 산화

인민군 남진 저지·경주 방어
연 상사, 부대원들과 돌격

정부, 을지무공훈장 수여
모교 도안초에 동상 건립


 한국전쟁의 포화가 멈춘 지 60여년이다. 전쟁은 반세기 이상 쉬고 있지만 이 땅에 진정한 평화와 자유는 아직 오지않았다.
 오늘의 평화는 참혹했던 그날의 아픔 없이는 결코 유의미가 아니다.
 가슴 가득 수류탄을 안고서 쏟아지는 총탄을 뚫고 적진에 뛰어든 열혈전사 없이는 이 땅의 자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 영웅들을 잊고서는 참된 평화와 자유를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이에 경주보훈지청(박창표 지청장)은 호국보훈의 달과 현충일을 맞아 지역의 호국영웅들을 선별했다.
 그 첫 번째 인물로 인민군으로부터 경주를 방어하고, 포항 탈환의 초석을 놓은 형산강전투의 영웅 연제근 상사를 전투일지와 함께 게재해 그 숭고한 업적을 기린다.

 ◇최후 방어선인 형산강 대접전
 1950년 8월 1일 동해안을 따라 남침을 계속하던 북한군 제5사단은 영덕 남쪽 강구 선에서 국군 제3사단의 강력한 저항과 미 해·공군의 근접지원 및 함포사격으로 전진이 정체되고 있었다.
 북한군 제2군단장 김무정은 제12사단으로 하여금 7월말 안으로 안동과 포항을 점령토록 했다.
 이에 북한군 제12사단은 안강과 기계를 점령한 후 8월 11일 미명에 포항을 점령했다.
 포항에 북한군이 침공했다는 보고를 접한 육군본부와 미 제8군사령부 낙동강 방어전선에 초비상이 걸렸다.
 적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민부대를 비롯한 3개 독립부대가 형산강을 방어선으로 처절한 혈전을 전개했다.
 포항의 남쪽을 흐르는 형산강은 아군 지상군 지원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일비행장을 끼고 있어 그 중요성은 더욱 높았다.
 북한군은 영일비행장을 탈취한 후 경주의 동북방으로 진출하려 했다.
 아군은 적의 진출을 막아냄과 동시에 포항 탈환의 발판을 마련하려 했다.
 특히 형산강을 가로지르는 형산교는 포항으로 통하는 유일한 교량으로써 피아간 없어서는 안 될 교량이기 때문에 폭파되지 않았다.
 그런 만큼 교량 확보를 위해 피아의 포화는 치열했다.
 이 치열한 격전 중에 연제근 상사가 이끄는 도하 돌격대의 영웅적인 행위가 담겨 있다.

 ◇전세 바꾼 형산강 도하작전
 인천상륙작전이 단행된 다음날인 1950년 9월 16일, 최전선의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북한군은 이미 낙동강전선 도처에서 동요하기 시작한 반면에 아군은 총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포항 근해의 전함 미조리호를 포함한 미 해군 기동함대가 16인치 함포로 900여 톤의 포탄을 형산강 북쪽제방을 연한 북한군 진지를 강타했다.
 수많은 북한군의 시체가 강물에 떠내려 오고 있었다. 며칠간 형산교를 돌파하기 위해 돌진해오다 아군의 총탄에 쓰러진 시체들이었다.
 물러서지 않고 최후 발악하던 적의 화력이 급격히 약화되었을 무렵, "형산강을 도하해 포항을 탈환하라"는 사단의 공격명령이 하달됐다.
 이때 연제근 이등중사의 분대는 형산교 서쪽의 장흥동 근처의 강가에 있었다.
 강폭은 100여m 가량 되었으나 수심은 가슴 정도에 이르러 도하가 가능했다.
 1950년 9월 17일 새벽 4시, 어둠이 밝기 전에 적전도하를 감행하려는 아군에 대해 적의 독전대는 강력히 저항했다.
 분노를 머금은 연제근 상사는 분대원들과 의견을 모은 후 소대장에게 분대의 사전 도하돌격을 간곡히 자청해 중대장으로부터 기어이 허락을 받아냈다.

 ◇기관총 적진지 폭파 후 산화
 아군의 공격준비사격이 북한군 진지를 강타하는 순간, 탄띠와 멜빵 가득히 수류탄을 찬 연 중사를 포함한 돌격대는 새벽의 어둠을 뚫고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살을 가르며 강을 헤엄쳐 나갔다.
 잠시 후 적진 가까이 접근해가자 어김없이 2정의 적 기관총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 순간 연제근 상사는 재빨리 "잠수!"라고 짧게 외쳤다.
 이는 미리 계획한 전법으로 강바닥에 엎드려 2분간 기어가는 것인데, 가슴에 수류탄을 가득 차고 있던 것도 수중포복에 필요한 중량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다.
 숨이 차면 다시 머리를 내밀어 공기를 마시고, 이럴 때면 적의 기관총탄이 집중해 그야말로 빗발치는 적탄과의 수중 숨바꼭질이었다.
 분대는 수중포복을 거듭하며 일보씩 전진해나갔다. 탄우를 무릅쓰고 전진해가는 연제근 분대의 수중돌진은 물속에서 행동의 자유를 최대로 억압당하는 상황이어서 더욱 비장하고 장엄했다.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적의 기관총에 의해 분대원 절반이 희생됐다. 연제근 상사도 왼쪽 어깨에 관통상을 입었다. 하지만 분대의 수중돌진은 멈추지 않았다.
 살아남은 최후의 결사대 3명과 함께 대안에 당도한 연제근 상사는 즉시 전신을 노출시키며 적의 기관총 진지를 향해 수류탄을 집어던졌다.
 한발, 두발, 그리고 세발을 던지고 난 후 마침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연제근 상사는 이처럼 강력하던 적의 기관총 진지를 기어이 파괴한 후 장렬히 전사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제22연대는 총진격을 감행해 형산강 도하에 성공했다.

◇전쟁기념관 호국인물, 제근상 제정
 형산강 전투의 영웅인 연제근 상사는 1930년 1월 14일 충청북도 괴산군 도안면에서 출생했다.
 도안초교를 졸업한 후 1948년 1월 국방경비대에 입대했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제3사단 22연대에서 분대장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전사 장소는 포항 형산강이며, 전사일은 1950년 9월 17일로 만 20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정부는 연제근 상사의 이러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2계급 특진을 추서하는 한편 1950년 12월 30일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육군 제3사단과 도안초교에 동상이 건립됐고, 전쟁기념관 호국인물과 제근상이 제정됐다.
강병찬 기자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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