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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의 지혜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5년 05월 14일(목)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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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김영호 교육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진(晉)나라 문공(文公) 때의 이야기다. 문공은 성은 희(姬), 이름은 중이(重耳)이고 진헌공의 아들이며 진(晉)나라 22대 군주이다. 부친의 애첩인 여희의 흉계로 쫓겨나서 개자추, 선진 등을 비롯한 여러 충신들의 보좌를 받으면서 천하를 주유하며 19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였다. 견문과 처세의 경험을 풍부히 체득하여 BC 636년에 진목공의 지지를 받고 진나라로 돌아와서 이복동생의 아들인 희공을 죽이고 자립한 군주이다. 재임 중에 어진 인사를 임용하여 진나라를 발전시켰고 공명정대한 정치로 내정을 안정시켰으며, 진(秦)나라와 연합하여 제나라에 대항하였고, 주왕을 보필하고 초나라를 물리쳐서 춘추시대의 패주가 되었다.
문공이 어느 날 수라상을 받고 보니, 생선요리에 머리카락이 감겨 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아서 요리사를 문책하려고 불렀다. 각종 찬거리를 정결하게 정성을 다해 살펴서 조리를 해야 마땅한데, 생선에 머리카락을 감았다는 것은 의도성이 다분히 있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너는 과인이 구운 생선을 먹다가 목이 막혀서 죽기를 바랐느냐? 무슨 이유로 구운 생선에 머리카락을 감았느냐?"
문공은 그 이유를 밝히라고 호통을 쳤다. 그랬더니 그 요리사는 변명을 하지 않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였다.
"저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세 가지 범했습니다. 먼저 숫돌에 칼을 예리하게 갈아서 명검과 같이 만들었습니다. 그 칼로 생선을 잘랐으나 머리카락은 자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의 죄입니다. 그리고 꼬챙이로 고기 덩어리를 꿰뚫었으나 머리카락만은 뚫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의 죄입니다. 화로에 숯을 채워 불을 지펴 생선이 완전히 익도록 구웠으나 머리카락만은 태우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의 죄입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혹시 아래 사람 가운데 저를 미워하는 자가 있어 이러한 못된 짓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부디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문공은 조리 과정을 소상하게 밝히면서 논리정연하게 표현하는 요리사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깨닫고 아랫사람을 불러 문책을 하였던 것이다. 생선에 머리카락을 감은 것은 요리사의 소행이 아니라 요리사를 모함하려는 사실이 밝혀져서 그를 벌하게 되었고 요리사는 무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에 문공의 문초에 "절대로 소인은 생선에 머리카락을 감지 않았습니다. 생선은 저가 굽지 않았습니다."라고 변명을 하면서 무죄를 주장하였더라면 사태는 달라졌을 것이다. 요리사가 그 순간 자신이 죄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억울하게 처벌을 받았을 터인데, 이 요리사는 자신이 지닌 지식을 활용하여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자신이 요리하는 과정을 소상하게 밝힌 것을 들었을 때 머리카락이 생선에 감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명약관화한 일이다.
요즈음 고위공직자의 금전문제로 매스컴이 바쁘다. 인터넷 창을 열어보니 막가는 세상을 방불케 하는 듯 날카로운 언어구사가 둔감해진 늙은 머리를 전기고문이라도 하는 느낌이다. 유치원생의 재미있는 미로게임도 아니고 마치 창과 방패의 기능시험이라도 하는 것 같다. 고등수학문제를 푸는 것 보다 난해한 문제로 전개되고 있어서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금과 같이 귀중한 화폐가치가 일부 청치인의 수중에서 그 명목가치를 상실해 가는 것을 볼 때 왜 돈을 만들었는지 원망스러워지는 기분이 든다. 금전거래의 실크로드를 착공하여 돈의 흐름을 아름답게 할 수는 없을까. 금전적 도덕성 회복을 통해 국민들이 바르게 살 수 있도록 피의자는 자기의 결백을 주장하는 데 주공의 요리사로부터 지식을 바르게 활용하는 지혜를 배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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