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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운동을 국제적 문화상품으로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5년 04월 22일(수)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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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최형대 사회복지학 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몇 년 전 중국 선양(瀋陽)의 랴오닝대학교(遼寧大學校)에서 열린 '한중 경제협력의 새 방안'에 대한 세미나에 참석을 하였다. 중국 산업화에 대한 이론구축의 중심역할을 한, 그 대학 소속의 경제학자께서 중국의 산업화는 농촌 부흥운동에서 시작하여 형성된 농업자본이 도시 산업자본의 토대가 되도록 하였다는 발표를 들었다. 이 말에서 1970년대 협동과 자조에 의한 농촌부흥운동에서 시작하여 도시산업화를 이룬 우리의 '새마을운동'을 그대로 벤치마킹하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새마을 운동은 1970년 4월 22일 한해대책을 숙의하기 위하여 소집된 지방장관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께서 제창한 수재민 복구대책으로 시작하였다. 넓은 의미의 농촌재건운동으로 근면·자조·자립정신을 바탕으로 한 자기마을 스스로 가꾸기의 '새마을 가꾸기 운동'이 그 시작이었다.
1971년 전국 3만 3,267개 행정 리·동에 시멘트 335포대씩 균일하게 무상 지원하여 하고 싶은 사업을 자율적으로 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한 부류는 마을의 숙원사업을 해낸 반면에 다른 부류는 시멘트로 뚜렷한 사업을 하지 못하였다. 이에 정부는 반응이 있는 1만 6600개 부락에 대하여 또다시 시멘트 500포대와 철근 1t씩을 무상공급하면서 자발적 협동노력을 장려하였다.
이와 같은 경쟁적·선별적 방식으로 점화된 새마을사업은 정부의 절대적인 지원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단순한 농촌개발사업이 아니라 공장·도시·직장 등 한국사회 전체의 근대화운동으로 확대·발전하게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마을운동의 정신적 기조로서 근면·자조·협동을 설정하고, 그 추진 방법으로서는 우수한 지도자의 헌신적 봉사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라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새마을운동은 대통령의 절대적인 후원과 우수한 남녀 새마을지도자, 그리고 정부(공무원과 정부지원)라는 3주체의 연합이 중심이 되어 추진된 국민운동이었다. 이승만 정권 시절의 동족상잔에 의해 황폐화된 국토를 자산으로 설립된 민주당 정권은 극심한 파벌싸움과 무능으로 9개월의 짧은 집권기간 동안 3차례나 전면적인 개각을 단행하며, 경제의 몰락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런 시대상황에 들어선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으로 경제개발의 기지개를 펼치면서 1970년 5월 6일 새마을 운동의 추진 방안을 마련하여 잘살아보기 위한 주민자조 운동으로 시작하였다.
어제는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가꾸기운동'을 제창한지 45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날을 지역마다 자기 실정에 맞게 기념하여 오다 2011년 '새마을운동조직육성법'에 의해 '새마을의 날'로 지정하면서 국가기념일로 기념해 온지 올해로 5회째 되는 날이다.
1960년대 경제개발이 도시 중심의 근대화전략이었다면,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은 낙후된 농촌근대화 전략이었다.
1970년 '한해대책회의'가 농촌 근대화와 부흥을 위한 '새마을 가꾸기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비참한 민족가난과 국제적 멸시에 대한 지도자의 뼈저린 경험에 의한 각오가 민족부흥운동으로 시작된 새마을 운동을 도시새마을운동과 새마을정신운동으로의 확대시켜 선진화의 견인차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운동은 해를 거듭할수록 체계화와 조직화를 거듭하여 산업고도화와 다양화사회에 적합한 가치관과 행동질서 정립을 위한 정신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나아가 이 운동은 우리의 문화산업으로 해외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중궁, 베트남 등과 같은 개발 도상국가들이 벤치마킹하여 자국 근대화에 도입하였으나 이제는 '새마을세계화재단', '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을 통해 저 개발 국가를 위한 조직적인 국제적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는 우리의 대표적 원조상품으로 자랑스럽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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