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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 선진국은 희망일뿐인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5년 04월 08일(수)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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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최형대 사회복지학 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지난 5일은 식목일(植木日) 제정 7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 산림역사에 깊은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산림청에서 묘목 나눠주기 행사를 비롯한 몇몇 행사를 하였지만 조용히 지나가고 말았다.
황폐한 민둥산과 토사 유출로 인한 전국적 재난과 한 해로 인한 피해가 극심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런 걱정은 고사하고 식목일마저도 없는 듯 지나감에 어려운 시절을 되새기면서 산림강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식목일은 나무를 아끼고 잘 가꾸도록 권장하기 위하여 제정된 날로 우리민족 고유의 한식·청명과 그 괘를 같이한다.
한식은 동지(冬至) 후 105일째 되는 날로 부족장이 새 불을 나누어주는 풍습의 양력 4월 5일 무렵의 전통적 날이다.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로 농본 사회에서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날로 이날은 너무나 영험하고 축복이 내리는 날로 어떤 궂은일을 하여도 화를 면하는 날로 알려져 있다.
일제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민족 자원인 수려한 임목의 수탈과 2차 대전 말기의 전투용 에너지를 위한 소나무 송진 체취로 황폐해지자 4월 3일을 허울뿐인 식목일로 지정하였다.
해방 후 미 군정이 1946년에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룬 날 즉 문무왕 17년 2월 25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과 조선의 성종이 선농단에서 직접 논을 경작한 양력 4월 5일을 기원으로 해서 식목일을 정했다.
따라서 식목일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농림 사상이 깃든 매우 뜻깊은 날이며, 계절적으로도 나무 심기에 적합하여 이날을 식목일로 정하게 되었다.
일제의 산림 수탈에 의한 피해의 누적과 전통적인 온돌난방 및 취사 연료용으로의 나무 사용은 산림 황폐를 더욱 심화시키고 말았다.
이처럼 손쓸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산림의 파괴는 식목 계획의 두서조차 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정부는 1960년 3월 15일을 기해 식목일을 '사방의 날'로 지정하여 공휴일에서 제외하였다가 이듬해 다시 공휴일로 부활하는 등 정책마저도 우왕좌왕하였다.
이는 산림 황폐로 인한 토사 유출로 농경지와 민간인의 극심한 피해를 사방과 식목의 동시 사업으로 복구하려는 고육지책의 일환이었다.
그 와중에 동족상잔의 3년 동란은 그나마 있던 산림자원마저 씨를 말리게 하여 정책적 식목 장려의 의미마저 잃어가던 중 1961년 제3공화국의 출발과 함께 한국임목 역사의 새장을 열게 되었다.
도벌(盜伐)을 5대 사회악의 하나로 규정, 국가 재건 차원에서 국토녹화부터 착수하면서 1961년 임산물 단속법 제정, 산림법 제정, 1962년 사방사업법 제정, 1963년 국토녹화 임시 조치법 제정으로 식목사업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1967년 산림청 발족,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 1968년 연료림 조성 5개년 계획수립, 밤나무 단지 조성, 1971년 그린벨트 제도 도입, 1973년 산림청을 내무부로 이관하여 입산금지, 산불방지대책 수립, 1974년 화전민 정리 5개년 계획 수립, 1976년 산림용 비료 개발, 1977년 육림의 날 제정, 자연보호운동 제창 등 육림 환경을 조성하였다.
이 결과 홍수 조절과 자연경관사업 그리고 경제수 사업 등의 실현으로 1999년 국내 산림의 경제적 가치가 34조 원에 이러러 국민 1인당 약 78만 원에 이르렀다. 이렇게 볼 때 참으로 격세지감과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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