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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아름다움은 욕구조절로
최형대 기자 / choihd2000@hanmail.net 입력 : 2015년 04월 05일(일)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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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사회복지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조선 인조 때 금강산의 이득춘의 아들 이시백과 박처사의 딸(박씨)이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혼례를 올리고 보니 신부가 괴물처럼 흉측했다. 이시백은 흉측한 아내를 차마 마주할 수 없어 아내를 멀리하고, 시어머니 역시 며느리를 구박했다. 결국 박 씨는 뒤뜰에 따로 조그만 집을 짓고 그곳에 몸을 숨긴 채 몸종 계화와 외로이 살게 되었다.
한 번은 박 씨가 이득춘의 조복을 하룻밤 새에 지었는데 그 솜씨가 신선의 것이었으며,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비루먹은 망아지를 사다가 삼 년 동안 공들여 기른 다음 내다 팔았는데 그 말이 바로 천리마였다.
그리고 뒤뜰에 나무를 많이 심고 정성으로 가꾸기에 이득춘이 그 이유를 묻자 뒷날 불행한 일이 닥치면 저 나무로 재앙을 막아 보고자 한다며 초당의 이름을 화를 피한다는 뜻의 '피화당'이라고 지었다고 대답했다.
박 씨의 빼어난 내조로 이시백이 과거에 장원 급제를 하고, 시집온 지도 3년이 되었을 때에, 박 처사가 이득춘의 집을 방문했다.
박 처사는 딸 박 씨에게 추한 허물을 벗을 때가 되었음을 알리고, 허물을 보관하여 두었다가 간간이 그것을 보면서 자만에 빠지지 말라 당부하고 떠났다. 다음 날, 박 씨는 허물을 벗고 선녀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다. 이시백은 박씨에게 겉만 보고 박씨를 박대했음을 진심으로 사죄했다.
전래되는 조선시대의 고대소설인 박씨부인전의 일부 내용이다. 이 작품을 소개한 것은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위해서이다.
아름다움은 극히 주관적인 개념으로 감각기관이 받아들인 정보의 처리결과에 대한 만족한 느낌의 상태이다. 이때의 감각기관은 불교에서는 육감이라 하여 눈(眼), 귀(耳), 코(鼻), 입(舌), 몸(身), 뜻(意)으로 나누고 있다.
여기서 나타나듯이 아름다움의 첫 번째 결정 감각이 눈(眼)에 의한 것으로 가장 형이하학적이다. 박 씨 부인의 외모적 아름다움에 대한 정보는 나머지 5가지의 기관에 의한 아름다움의 정보들을 모두 불식시키면서 최종 판정의 핵심적 기준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그 결과 바느질 솜씨나 천리마 사육 등의 재능적 아름다움과 '피화당'으로 나타난 예지적 아름다움도 불식되고 가장 친근하여야 할 가족으로부터 구박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플라톤의 이데아에 의한 초감각적인 미에 의한 아름다움이나 중세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에 의한 아름다움도 의미가 있지만 하루의 일상을 사는 우리들은 소시민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육감에 의해 얻어지는 정보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만족을 느끼는 상태를 아름답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족함에서 오는 욕구에 대한 충족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 가장 현실적일 것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욕구의 수준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이 다행스럽다. 그리고 다수의 욕구들 간의 비중도 조절할 수 있음이 더욱 다행스럽다.
서구에서는 전통적으로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있는 원리를 조화와 균형에서 찾았다. 아무리 육감 전체의 만족도가 높더라도 어느 한 감각의 만족도만 극대로 높은 상태 즉 최대 편향의 상태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다. 편향을 벗어난 조화와 균형은 욕구의 수준조절과 비중의 조절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제 일방적으로 안식(眼識)에만 치우친 욕구를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으로 고르게 나누어 균형과 조화를 찾아야만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시백의 가족들이 이처럼 진정한 아름다움의 욕구 상태를 가졌더라면 박씨 부인이 추한 허물을 벗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신혼 초부터 뒤뜰에 조그마한 집을 지을 생각조차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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