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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승춘의 밤길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5년 04월 02일(목)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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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김영호 교육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서천 변 다듬어진 길을 걸었다. 서천다리에서 흥무공원을 지나 금장대가 있는 쪽으로 곧게 단장된 이 길은 벚나무가 장대하여 봄에는 벚꽃이 피어 마치 긴 터널을 이루고 개나리가 피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도중에 흥무공원이 있어서 그곳 벤치에 앉으면 솔바람이 시원하게 철폐(淸肺)작업을 해주고, 형산강을 가로지른 장군 다리는 마치 장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길을 많은 사람들이 밤낮으로 산책하고 있다. 저녁 식사를 간단히 하고 휴식을 취한 후 이 길로 산책을 나갔다. 해가 진 후 두어 시간 지났으니 거리는 비록 가로등이 밝혀 주었으나 걸음마다 마음은 희미한 발끝에 머문다. 옥녀봉 정봉 위에 초사흘 궁월(弓月)이 정겨운 눈빛으로 밝은 별을 쳐다보고 그네를 탄다. 군데군데 고개 내미는 작은 별들이 밤하늘에 바둑알을 놓으며 천공(天空)을 아름답게 꾸민다. 달이 비춰주는 야경은 형산강의 은빛 물결 위에 군무(群舞)되어 흐른다. 흥무공원 긴 의자에서 나누는 정다운 모습들이 소리 없이 의의(依依)한데 우뚝한 금장대는 낙안(落雁)의 고담을 찾는 듯하다.
동남쪽 반월성 궁터에 복원의 설계도가 밤 무지개 되어 빛나고, 천년의 찬란함이 그리운 봄꿈으로 다가오는 밤길이다. 목석간장인들 어찌 시정이 없으랴. 이백의 소대람고(蘇臺覽古)가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듯 성긴 두발을 스치며 회억의 머리를 세운다.
구원황대양류신(舊苑荒臺楊柳新) 능가청창불승춘(菱歌淸唱不勝春) 지금유유서강월(只今惟有西江月) 증조오왕궁이인(曾照吳王宮裏人)
옛 궁원 황폐한 고소대(姑蘇臺)엔 버들만 새로운데 마름 노래 맑게 부르니 봄의 정취 누를 길이 없구나. 지금은 오직 서강의 달만 떠 있는데 일찍이 오왕의 궁중 여인들을 비춰 주었었지.
"고소대에 와서 보니 춘추시대에 오왕 부차가 서시 미인들과 살던 화려했던 궁전은 지금 황폐하여 간 곳이 없고 자취만 남았는데 오직 버들나무가지만 우거졌고, 근처에는 여인들이 마름을 따며 노래를 맑게 부르니 봄에 느끼는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다. 지난날의 화려했던 자취는 다 가고 변함없는 것은 지금이나 그때 나 여전히 하늘에서 비추는 서강의 달뿐이다.
저 달은 부차의 궁전에 살던 서시 같은 미인을 비췄던 달이라고, 가버린 세월의 무상함이 달빛에 비치는 듯 다감한 시정을 느끼게 한다.
화려한 궁궐, 막강한 권력,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도 세월에 밀려 다 가버린 것이다. 오직 변함없는 것은 일월뿐인데, 세속은 서로 아귀다툼으로 좋은 것을 차지하려고 하니 어리 섞은 짓인 것 같다.
장기간 군림하면서 나라 발전에 헌신했던 먼 나라 국부가 서거했다는 소식이며, 캠핑 유객이 텐트 화장을 당했다는 것이며, 곳곳에 산불이 발생하여 자연을 태웠다는 등 세월은 무로 회귀하는 답을 느끼게 한다.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이 서강의 달이라 시운(詩韻) 하니, 잠시라도 그 의미를 생각해 보면 미만 백세(未滿百歲)를 살다가는 인생인데 국정이든 시정이든 공직생활이든 개인생활이든 번잡하게 꾸려갈 필요가 없지 않은가.
달빛을 받으며 경주의 강변을 걸어보라. 경주 시민만이 아니라 외래 관광객까지 밤의 정취를 느끼면서 생의 문제를 소박하게 자문자답해 볼 수 있도록 정성 들여 만들어 놓은 말끔한 길인 것이다.
그 길을 밤에 한 번 걸어보면 아무리 둔재라 하더라도 나는 무엇이며, 너는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아마도 저절로 각성될 것으로 믿어진다. 증자의 일일삼성과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사람으로 태어나서 근본적 역할을 잘 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윤택한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불승춘의 밤길은 모두 가보아야 할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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