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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조선 명기 '홍도야 울지마라' 복원
아파트 공사중 사라진 묘·비
기념사업회, 5월 16일 결성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5년 03월 21일(토)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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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명기홍도지묘(東都名技紅桃之墓)’란 비석이 세워져 있던 경주시 도지동 형제산 기슭의 홍도 묘가 2005년 아파트 신축으로 감쪽같이 사라져 지역 예술인의 분노케 한 사실이 있다(경주신문, 김윤식 글 2007년 7월30일~8월12일 연재)
이후 그녀를 기리는 기념사업회가 조직돼 묘·비 복원사업을 추진해 오다 비로소 오는 5월 16일 그 결실을 맺게 된다.
조선의 제일의 명기(名妓)였던 홍도의 본명은 최계옥, 자(字)는 초산월(楚山月)이었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경주에 살면서 세를 과시했던 가선대부 최동명이다.
명석하고 미모가 뛰어났던 홍도. 열 살 무렵에 이미 시·서·화에 통달한데다 음악과 춤에 능해 경주 교방에서 활동했다.
스무 살에 이르러 경주부윤 유한모의 천거로 상예원에 뽑혀 창경원으로 들어가 상궁이 됐다. 당시 기생 중 노래와 춤에 능한 자는 궁중 여악(女樂)으로 선발돼 공직에 임하던 시절이었다.
그녀의 노래와 춤이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자 그녀를 몹시 아낀 정조가 홍도라는 별호를 하사했다.
이후 정조의 장인이자 순조의 외조부였던 박준원이 궁궐 연회석에서 펼쳐진 그녀의 독특한 가무를 본 후 39년이란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빠져 사위인 정조에게 외부(外婦)로 허락해줄 것을 간청했다.
이에 정조는 상처한지 10여년이 지난 59세의 장인에게 소실로 앉히도록 조처했다.
홍도는 박준원이 예순여덟에 중풍으로 세상을 뜨자 여주에서 삼년상을 마친 후 경주로 돌아왔다. 그때 나이 서른둘. 이후 마흔다섯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13년간 소리꾼, 악공, 기생 등 후진 양성에 정열을 바쳤다.
멀쩡했던 그녀의 묘는 불행히도 2005년 아파트 시공자 이모씨가 경주시에 무연분묘개장신고를 하면서 사라졌는데, 그녀의 묘는 둘레 10m, 높이 2m 정도로 일반인 묘보다 2배 가량 컸고, 높이 120㎝, 너비 50㎝, 두께 20㎝이었던 비석에는 소리꾼 이상복이 짓고 검지를 지냈던 최남언이 예서체 388자로 정교하게 썼던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
“철종2년 경주의 풍류객 및 교방의 여러 악공과 기생들이 홍도(紅桃)를 정부의 사종(師宗)으로 여겨 그를 잊지 않기 위해 약간의 재물을 보아 석돌을 세워 무덤을 표시한다. 나는 이 홍도의 실적을 써서 보내니 세상에 오래 전하도록 할 뿐이다.
명(銘)하기를 미인이 있어 동방에 으뜸이었으니 귀여운 얼굴 예술이 능하였도다. 동도(東都)의 형제산 선영 아래 간좌(艮坐) 언덕에 장사를 지낸다”라는 일대기와 비명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홍도기념사업회는 묘역 복원을 앞둔 오는 26일 오후 3시 황실예식장 별관2층에 자리한 신라문화원 소회의실에서 제2차 회의를 소집한다.
주요 안건은 △현곡면 오류리 산 5-2 외에 묘역을 조성하며 △모금액을 500만원으로 정하고 △위원 200인을 선정해 1인당 3만원씩 부담토록 한다는 것이다.
기념사업회 측은 최종회의인 만큼 참석을 원할 경우 진흥문화재연구원(원장 김호상, 054-742-7602)에게 오는 25일까지 연락하면 위원으로 기념사업에 동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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