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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의 해…경주박물관서 '양' 특집전
17일부터 5월 3일까지
이종훈 기자 / lee0071@chol.com 입력 : 2015년 02월 17일(화)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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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해인 을미년을 맞아 능묘 출토품 양머리 청동제 등이 특별 전시된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아름답고(美) 착한(善) 동물, 양(羊)’을 신라미술관 1층에서 오는 17일부터 5월 3일까지 특집진열 한다고 15일 밝혔다.
양은 십이지(十二支) 가운데 여덟 번째 동물로서 남남서쪽을 가리키며 오후 1~3시에 해당한다.
또 양은 온순한 성질로 인해 예로부터 평화와 순종의 상징으로 여겼다. 美(미 : 아름다움), 善(선 : 착함), 義(의 : 올바름), 祥(상 : 상서로움)처럼 羊이 들어간 한자에는 좋은 뜻을 지닌 것이 많다.
이는 양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양이라고 하면 곱실거리고 부드러운 털이 몸에 가득 난 초원의 면양(綿羊 : sheep)을 떠올리기에게 된다.
그러나 면양은 근대 이후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양의 한 종류이다. 십이지의 미(未)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토종 양은 면양보다는 염소와 닮은 산양(山羊 : goral)에 가깝다.
본래 양(羊)이란 한자도 면양과 함께 산양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었다.
경주박물관에 따르면 양과 관련된 우리나라의 기록은 많지 않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599년 백제가 양 두 마리를 일본에 보내어 일본에서 양 기르기가 시작됐다고 기록돼 있다.
신라 헌덕왕(재위 809~826년) 때인 820년에 고양(?羊 : 염소로 추정) 두 마리, 백양(白羊) 네 마리, 산양(山羊) 한 마리 등을 일본에 보냈다는 ‘일본후기(日本後紀)’의 기록은 당시 우리나라에 여러 종류의 양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고려(918~1392년) 정종(재위 945~949년) 때는 개경 근처에서 왕실의 식용으로 양을 길렀다고 한다.
1116년(예종 11년)에는 요(遼 : 916~1125년)나라의 유민이 양 수 백 마리를 갖고 투항했고, 1169년(의종 23년)에는 금(金 : 1115~1234년)나라에서 양 2천 마리를 보내온 기록이 있다.
당시 북방 민족과의 교류로 양이 들어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시대(1392~1897년)에는 양장(羊場)을 둬 양을 길렀고, 제물로 썼다는 기록도 전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양을 대규모로 사육하진 않았지만 고기와 젖, 그리고 가죽과 털 등을 주는 헌신적인 동물로 사랑을 받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특집진열 전시품으로는 신라 4세기부터 6세기에 축조된 대형 능묘 출토품 가운데 양머리 모양이 달린 청동제 초두(자루솥)들이 출품된다.
특히, 경주 황남대총, 천마총, 서봉총 출토 초두를 한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경주 내남면 화곡리 무덤 출토의 토제 양, 용강동 무덤 출토 청동제 양, 그리고 표면에 십이지를 부조로 새긴 성동동 출토 청동제 추(錘) 등이 선보인다.
경주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옛사람들이 만든 다양한 양들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양의 해를 맞이해 양의 미덕(美德)을 함께 생각해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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