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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을 되돌아보며”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6년 06월 24일(수)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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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전세훈 본사 국장 | | ⓒ 경북연합일보 | | 군대는 문 앞에도 못 간 안규백 국방부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처음부터 총 한 번 잡아보지 못했다는 자질론에 휩싸였지만 이재명 정부는 임명을 강행했다. 결국 국토를 수호해야 할 장관이 오히려 국방부 장관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리고 그가 내세운 친북적 정책과 어처구니없이 아군의 무력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 파다한 정설이다. 정치적인 수사를 떠나 납득하기 힘든 이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언론의 혹독한 질책은 당연한 결과다. 그러기에 이재명 정부의 지지율 하락을 견인하는 인사 중의 한 명인 것만큼은 명약관화하다. 반면에 국가보위에 관심 없는 안 장관과는 달리 6·25 전쟁 때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외국인 중 쥴 장 루이(Jules Jean-Louis) 소령이 있다. 프랑스의 쥴 장 루이 소령은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전투에서 1951년 5월 8일 한국군 부상병 두 명을 구출하고 자신은 지뢰를 밟아 34세의 한창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쥴 장 루이는 육군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프랑스군 수석군의관으로 우리나라에 1950년 11월 26일 처음 부임하였다. 6·25 전쟁에 참전하여 남성리전투와 지평리전투 그리고 1037 고지전투 등 5개 전투에 참여했다. 그는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에서 1951년 5월 8일 국군 장병 2명이 지뢰를 밟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에 그는 지뢰밭의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가 장병을 구출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이 설치한 지뢰를 돌아오는 길에 밟고 34세의 한창 젊은 나이로 자신의 꿈을 펴보지도 못하고 전사하였다. 지난 1986년 한·프랑스 수교 100주년이 되던 해에 자신의 목숨을 낯선 이국 땅에서 초개와 같이 버린 쥴 장 루이의 거룩한 희생정신을 본받고 후세에 알리기 위하여 그의 동상을 전사지에 건립하였다. 이후 해마다 5월 7일에는 지역 대표와 프랑스 대표들이 참석하여 추모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에서도 쥴 장 루이 소령에게 십자훈장 등 6개의 훈장을 수여하였고, 프랑스에 있는 프뤼제시 육군병원을 장 루이 병원으로 개명하는 등 그의 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장 루이 소령 같은 외국인까지 합세하여 지킨 대한민국을, 구태 민주인사들의 입으로만 민주를 외침에 편승한 이재명 정부는 국가를 제대로 지킬 의지가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정녕 나라가 북한 괴뢰 정부에 의해 망해야만 정신 차리겠는가! 역사는 항상 말해주고 있다. 무능한 정부의 말로는 비참한 결과로 마감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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