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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곳에 사람이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5년 10월 13일(월) 19:09
↑↑ 서병진 전 경주여고 교장
ⓒ 경북연합일보
가진 것이 넉넉(富裕)하면, 깊은 산중에 살아도 먼 곳에서 오는 친구가 있다. 빈거료시 무상식 부주심산 유원친((貧居鬧市 無相識 富住深山 有遠親). 가난하면 번화한 시장 거리에 살아도 서로 아는 사람이 없고, 부유하면 깊은 산중에 살아도 먼 곳에서 오는 친구가 있다. 가난하면 늘 오던 지인(知人)도 발길을 끊는다. 그러니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번화한 시장 거리에 살아도 서로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부유하면 깊은 산중에 살아도 지인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얻을 것이 있어서 친구가 찾아오기도 하고, 즐길 것이 있어서 벗이 찾는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도다” 했지만, 말이 그렇지 벗이 오면 박주일배는 할 수 있어야 하리.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듯이, 재물이 넉넉하면 인심도 후하게 되고, 후한 인심을 따라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형편이 궁핍해지면 차츰 찾는 발길이 드물어진다. 세상인심이다.
“산수간(山水間) 바위 아래 띠집을 짓노라 하니, 그 모른 남들은 웃는다 한다마는, 어리고 햐암(鄕闇)의 뜻에는 내 분(分)인가 하노라.” 이렇게 산중생활을 자신의 분수로 아는 고산 윤선도도 ‘만흥’의 마지막 수에서 “강산이 좋다 한들 내 분(分)으로 누웠느냐. 임금 은혜를 이제 더욱 아노이다. 아무리 갚고자 하여도 하올 일이 없어라.”에서 속세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덕망이 높고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 깊은 산중 오지(奧地)에 움막을 짓고 살아도 제자를 비롯하여 찾는 사람이 많다. 배움에 목마른 사람도 있지만, 학덕이 풍부한 사람과 만남은, 만남 자체가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는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에서 “송하문동자(松下問童子) 언사채약거(言師採藥去) 지재차산중(只在次山中) 운심부지처(雲深不知處)”라 읊었다. 깊은 산중까지 찾아가서, 동자에게 너의 스승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 물으니, 스승님은 약초를 캐러 가셨는데, 이 산중에 있지만 구름이 깊어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힘써 찾아왔지만 만나지 못한 것이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통한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깊은 산중 아니라 어떤 어려운 곳에 있다 하여도 반드시 찾아가 도(道)를 묻는다. 공자도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라,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했다. 도(道)를 들을 수 있으면 길의 멀고 가까움이 문제가 되겠는가.
불교의 진리를 배우기 위해서 많은 승려들이 중국과 인도를 다녀왔다. 그중에서 원효와 의상은 함께 당나라로 가기 위해 길을 떠났지만, 원효는 해골 바가지의 물을 통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깨달음이 마음먹기에 달렸음을 간파하고, 신라에 남아서 구도의 길을 걸었다. 원효는 일심 사상과 화쟁 사상으로 불교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고, 실천불교, 대중불교의 길을 열었다.
의상은 당나라로 가서 훌륭한 스승인 지엄 스님을 만나 화엄경 공부를 통해서 ‘법성게’라는 빛나는 글을 남겼다. 그런 의상이 서라벌이 아닌 변방 영주에 부석사를 세웠다.
원효가 민중 속에 묻혀 지내고, 의상이 변방에서 중생을 교화하고 있어도, 왕과 대신들은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원효와 의상을 찾았다. 그들에게서 얻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유를 지녀라. 경제적 여유, 넉넉한 덕망, 민중의 손을 잡아주는 여유를 지녀라. 넉넉함이 있어야 사람이 모인다. 민주적입네 하고 백가쟁명식으로 떠들면 통솔(統率)이 없다. 통솔이 안 되면 지휘 없는 관현악단, 콩가루 집안이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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