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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에 꽃 피듯
-구약성서 시편 패러디-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5년 04월 10일(목) 18:54
↑↑ 서유진 소설가
ⓒ 경북연합일보
벚꽃이 떨어지고 있다. 꽃무리 속에서 떨어져 나와 바람에 흩날리다 밟힌다. 안간힘으로 서로 붙들고 있는 꽃잎이라도 결국은 떨어지고 만다. 서로 함께 어울려 꽃 피웠던, 황홀했던 날은 며칠에 불과했다.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꽃잎만이 아니다. 우리도 어둠 속 음부의 세계로 추락하는 절망과 죽음의 생명체이다. 만물이 약동하는 이 봄날의 사월에 누군가는 추락하고 누군가는 생을 떠나갔다. 언젠가는 마주해야만 하는 떨어짐의 진리 앞에 우리는 얼마나 아프고 쓰라린지, 손톱만 한 벚꽃 이파리 같은 인생이다.
한반도와 세계의 상황이 T. S.엘리엇의 시 <황무지> 같다. 엘리엇이 20세기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황무지>를 썼을 때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황폐한 상황이었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진부하기까지 한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첫 구절로 시작하는 <황무지>의 1부 ‘죽은 자의 매장’에서 시인은 전쟁과 황폐한 문명과 현대인의 정신적 방황을 묘사했다.

비록 황무지가 아니라 하더라도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는 생명체는 없다.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우리의 영광과 명예는 사라진다. 평생을 아귀다툼으로 모은 재물도 남에게 남겨두고 떠나는 것을 보면서도 어리석은 우리의 속생각에는 아파트와 증권과 통장 안의 거액이 내 곁에 영원히 있으리라, 우리의 모든 것이 대대에 이르리라 생각한다. 어떤 이는 빌딩에 자기의 이름을 새겨 넣고, 어떤 시인은 죽기도 전에 스스로 시비를 세우고, 호랑이가 가죽을 남긴다면서 열심히 책을 짓고, 그림을 남기고, 족보를 만든다. 죽도록 평생을 바쳐 이루려는 그 노력이 실로 애처롭다. 그러나 우리는 죽으며 죽을 때 가져가는 것이 없고 우리의 영광과 명예와 지위와 권력이 우리를 따라 죽음의 세계로 내려가지 못한다. 아! 사람이 존귀하지만 영원하지 못함이여. 우리가 존귀한 존재지만 이것을 깨닫지 못하니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구나. 그러나 신이 인간에게 죽음과 절망만 주었을까?

그대가 작년 뜰에 심은 시체에서 싹이 트기 시작했나요?
올해엔 꽃이 필까요?
때 아닌 서리가 화단을 망치지는 않았나요?
앞으로는 개들을 멀리하세요, 개는 사람의 친구이기도 하지만 발톱으로 화단을 파헤칠 겁니다.
그대! 위선적 독자여! 내 친구여! 내 동지여!

시체에서 싹이 트기 시작했나요? 올해도 꽃이 필까요? 라고 시인은 묻는다. 핀다는 희망을 가지고 묻고 있는 것이다. 다만 화단을 망치는 개와 위선적 독자나 친구, 동지가 희망을 파괴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죽은 땅에서 아무것도 싹트지 않을 것 같은 <황무지>, 그 땅에 묻는 ‘죽은 자의 매장’은 그저 매장이 아니다. 엘리엇은 황무지에서도 생명이 움트듯 죽음에서 부활의 희망이 있다는 진리를 성서(에스겔, 전도서, 이사야)에서 찾았다고 한다. 시편에 나오는 아삽의 시도 맥락이 같다.

내 영광은 사라지고 부자나 권력자의 영광이 창대해질 때 우리는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도 찰나에 떨어져 사라질 벚꽃 한 이파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힘든 네 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희를 환난에서 건져내어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도록 만들겠다.
그러나 악인은 교훈을 미워하며 내 말을 제 뒤로 던져버리고 악과 연합하고 간음하고 혀로 거짓을 꾸미고 형제와, 같은 배로 태어난 어머니의 아들을 서로 비방한다.
내가 잠잠히 그것을 보고 기다려왔더니 사람들이 나를 두려워하지도 않는구나. 이제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앞에 낱낱이 드러낼 것이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너희여. 너를 창조한 나를 감사함으로 바라보아라. 그리고 이제 이것을 생각해라. 너희 행위를 옳게 하는 자를 내가 구원하리라.
아삽은 황무지에서 꽃이 피듯 인간의 죄 중에도 신의 구원이 있음을 노래했다. 그러므로 사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구원의 달, 부활의 달이라 부르자. 내년에 시체를 매장한 땅에서도 꽃이 필 테니까.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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