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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춘향아
-우리 고전 제대로 읽기-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5년 03월 26일(수) 19:15
↑↑ 서유진 소설가
ⓒ 경북연합일보
도련님, 이제 가면 언제나 오려시오? 절로 죽은 고목에 꽃 피거든 오려시오? 병풍에 그린 금닭, 수탉이 긴 목을 늘려 두 날개를 땅땅 치고 꼬끼오 울거든 오려시오? 금강산 상상봉이 평지 되어 물 들어와 배 둥둥 뜨거든 오려시오?

이것은 필자가 참여하는 소설가들의 포럼에서 논의할 <춘향전>에 나오는 이별의 장면이다. 텍스트를 춘향전으로 하자는 의견이 나오면서 의아심을 나타내는 작가들이 많았다. 한국인이라면 춘향전의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독자나 창작자에게 새롭지 않은 점에서 접근이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섣부른 궤변임을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춘향전에는 120여 종의 이본이 있다. 최초의 춘향전은 <만화본 춘향가(1754년)>로 만화(晩華) 유진한이 판소리를 듣고 쓴 200구의 한시(漢詩)인데 춘향전에 대한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한글로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별 춘향전(1846)>, 다음으로 신재효의 < 춘향가>, 그 후 나온 <열녀춘향수절가(문학교과서 수록)>가 춘향전의 대표적 작품이다. 예전의 영화가 스토리에 판소리를 차용한 정도였다면 제목을 해학적으로 바꾼 영화 <춘향뎐>은 소리와 영상이 대등하게 만나는 판소리와 영화의 중간 장르를 개척했다.
리얼리티로만 보자면 소설을 따라잡을 수 없다. 김연수의 단편소설 <남원 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은 춘향전을 뒤집기 한 작품이다. 탐관오리 변학도를 청렴하게, 춘향을 감옥에서 자결하게 만들어놓았다. 이런 춘향전 이본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춘향과 이 몽룡이 만나는 해피 엔딩 대신 춘향이 자결을 하게 바꾸다니, 아무리 패러디도 가능하고 재창조도 좋지만 ‘춘향아, 미안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영화 <춘향뎐>이 형식의 혁명이라면 김연수의 소설은 내용(스토리)의 혁명이라 할 수 있다.
그보다 더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 점이 있다. 어린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국민소설로 알려진 원전에 가까운 춘향전을 읽어본 독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민음사에서 나온 <춘향전>을 풀어 옮긴 송성욱 교수는 작품해설에서 놀라운 사실을 지적했다. 홍길동과 성춘향 중 누가 실존 인물이냐고 묻자, 학생들의 과반수가 홍길동은 가짜이고 성춘향은 진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남원에 성춘향의 초상이 그려진 탓인지, 홍길동이 축지법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아다녔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홍길동이 실존 인물이고 성춘향이 허구 인물이라는 것쯤은 상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처구니없는 반응이었다고 송 교수는 술회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춘향전은 사실 요약하면 몇 줄밖에 안 되는 간략한 설화적 내용뿐이다. 짧지만 뮤지컬, 드라마, 영화 등으로 끊임없이 재창조되어 최고의 대중성을 자랑한다. 영화나 뮤지컬과 소설은 미학의 잣대가 다르다. 소설이 주는 재미를 영화나 뮤지컬이 대신할 수 없다. 영화나 뮤지컬, 드라마는 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인 데 반해 소설을 읽는 독자가 적은 것은 실로 유감이다.
춘향전의 주제를 사랑이라 하기도 하고 정절이라고 하기도 하며 양반과 천민의 신분 갈등이라고도 한다. 한편 그 모든 것들이 다 주제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가 복잡하다는 것은 춘향전의 작품성이 그만큼 우수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춘향전은 갈등이 선명해서 대중소설이나 멜로드라마로 보기도 한다. 조선시대 독자들은 소설 춘향전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가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힘든 삶의 압박에서 조금이나마 즐거움을 찾았을 것이다. 미혼 남녀의 혼전 성행위가 노골적으로 묘사되고 신분을 넘어선 사랑은 조선시대의 성리학적 윤리 이념 때문에 애정과 욕망을 억압당해 온 독자와 소설작가의 시대적 요구에 파격을 가했다. 구어체로서 문장과 어휘에서 넘치는 생동감, 특히 의성어·의태어의 절묘한 구사, 리얼한 대사, 순우리말의 맛이 오롯하다.

에고, 나는 싫어요.
도련님 춘향 옷을 벗기려 할 제 뛰놀면서 어룬다. 만첩청산(萬疊靑山) 늙은 범이 살찐 암캐를 물어다 놓고 이가 없어 먹지는 못하고 흐르릉 흐르릉 아웅 어루는 듯…… 춘향의 가는 허리를 후리쳐 담쏙 안고 기지개 아드득 떨며, 귓밥도 쪽쪽 빨고 입술도 쪽쪽 빨면서…… 쌍쌍이 날아드는 비둘기같이 꾹꿍 끙끙 으흥거려 뒤로 돌려 담쏙 안고…….

또 수없이 등장하는 고사와 한시의 주석을 읽는 재미는 독자를 탐구적으로 변하게 한다. 해학과 유머와 재치가 번뜩이는 언어유희는 서양의 고전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러브스토리로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해학으로는 《율리시스》를 능가하는 우리 고전임을 읽어보면 알게 된다. 춘향전의 모든 미학적 매력은 원전에 가까운 소설을 통해서만 즐길 수 있다. 이 기회를 통해 《춘향전》을 제대로 읽어 국민소설 독자로서 부끄럽지 않았으면, 그것이 우리 고전의 인물 춘향에게 미안하지 않을 것 같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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