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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 술로 기운을 차리자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5년 03월 05일(수) 19:22
↑↑ 서병진 전 경주여고 교장
ⓒ 경북연합일보
근래에 술을 한잔하고 나면 이튿날이 괴롭다. 나이 탓인 것 같다. 음주 운전으로 인한 사고도 잦다. 운전 면허증을 반납하고 돌아오면서 음주문화를 일고(一考)해 보았다.
언제부터 술을 마셨을까?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삼한의 농경의례 등의 제천의식에서 음주와 가무를 한 기록이 있다. 고대에는 일종의 종교행사로 추수 후에 부족이 함께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놀았던 것 같다. 김유신과 기생 천관녀의 이야기로 보아 삼국 시대에는 귀족 중심으로 술을 판매하는 업소가 있었음이 짐작된다. 파격적이긴 하지만 중생 구제를 위해 저잣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서민들과 어울렸다는 원효의 이야기에서 서민 대상의 술집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은 모이면 마시고, 취하면 싸우고, 다음날 다시 만나 웃고 함께 일한다고 한다. 사회적 모임이나 집안 모임이나 술이 빠질 수 없다. 기분 좋아도 한 잔, 기분 나빠도 한 잔, 일한 뒤에도 한 잔, 갈증이 날 때도 한 잔이다. 더욱이 경제난과 자연재해, 돌아가는 정치 행태로 가슴이 답답할 때 그런저런 핑계로 술을 마신다. 처음엔 사람이 술을 마시고 나중엔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한다. 1차에서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분위기 반전을 위해, 상대방의 제안에 거부할 수 없어서 2차, 3차 옮겨간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부담이 될 때가 많다. 술은 어른 앞에서 배워야 한다고 할 정도로 엄격한 법도가 있었다. 의식(儀式)이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술좌석에 참석하게 되고, 술자리마다 자리에 따른 법도를 지켜야 했다. 법도의 유일한 원칙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술의 주인이어야 술이 좋은 것이다. 잔을 돌리되 세 순배 이상 하는 것은 술 못 먹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므로 천박하다고 보았다. 사람을 아끼는 문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문화가 우리 문화의 특성이듯 우리 술 문화의 특성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신(神) 사이를 가깝게 해주는 화합과 화해의 술 문화였다.
요즘에는 나를 포함해서 술을 고주망태로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많다. 남보다 술을 많이 먹고도 실수 없이 잘 버티는 사람을 대단하게 평가하는 경우를 본다. 대단한 체력,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이며, 대범하게 일을 처리하는 능력자로 평가받는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음주문화다. 술잔이 제사나 각종 의식에서는 하나의 절차로서 정중히 올린다. 사사로운 모임에서도 술이 경직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스트레스를 풀어 즐거움을 높여주는 윤활유가 된다. 어른 앞에서는 약간 정면을 피하여 겸손하게 술을 마시고, 상대에게 권할 때도 정중하게 권하는 매너가 있어야 한다.
할 말, 하지 못할 말을 함부로 해도 면책 받는 술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술을 百藥之長으로 추켜세우려면 올바른 주도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 도수가 높은 술을 처음엔 코로 향을 맡고, 입으로 술맛을 음미하며, 다시 빈 잔으로 향을 맡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술을 멋있게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저녁나절 시장기를 메우려 막걸리 두어 사발 마시거나 종일의 노동 후 짜릿하게 넘어가는 소주 한 잔에 이런 품위를 찾을 수는 없다. 술이 시름을 달래 주는 약인 양 폭음하는 문화, 권력기관에서 유래되었다는 폭탄주 문화, 음주 운전 문화를 지양하자는 말이다.
술은 좋은 음식이다. 알맞게 마셔서 우의를 다지고, 생활이 어렵더라도 힘을 내고, 연말연시에 덕담을 나누는 술 문화. 술은 건강을 해치는 음식이 아니라 생활에 활력을 주는 음식이다. 2월 초하루에 영등할미 올라가고, 농부는 한잔 술에 일터로 간다.
경칩(驚蟄)이다. 아무리 추워도 개구리가 꼼지락거릴 것이다. 한잔 술로 기운을 차리자.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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