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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십시오
-‘이바라기 노리코’ 시인이 주는 위로-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5년 02월 10일(월) 19:16
↑↑ 서유진 소설가
ⓒ 경북연합일보
작은 도서관 서가에 꽂힌 신간 한 권이 눈길을 끌었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진은영 산문집인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이다. 이 책을 발견한 것은 큰 행운이다. 스물여덟 개의 소제목 중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로 군국주의를 경계하다>에서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에 대한 글을 만난 것이다. 이 글은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에 대한 적대감으로 얼어붙은 심장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게 한다. 한국인으로서 일본 정부의 후안무치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들로 인해 맺힌 응어리는 풀 길이 없는 거대한 빙하와 같다. 선교사를 파송하는 기독교적 사랑이 아니고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뼛속 깊은 원한이다.
일본이 패전했을 때 노리코는 여학생이었다. 노리코는 지금까지, 개인적 욕망보다 천황과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배워왔던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서양 문명은 죄악이고 외국인을 만나면 스파이로 여기라고 배웠다. 천황을 비롯한 군국주의자들은 무의미한 전쟁놀이로 젊은이들의 삶을 부숴버렸다. 조국이 저지른 시대의 속임수를 알아차린 노리코는 절망에 빠진다. 이후 프랑스 출신 화가 조르주 루오의 영향을 받아 루오처럼 살겠다고 결심한다. 루오는 이렇게 말했다.

“고통이나 비참함 앞에서 달아나지 마라. 덧없는 이익들, 특권들, 일시적 명예 때문에 너 자신 안에서 잘 느끼고 있는 것의 작은 조각까지도 양보하지 마라”

이바라기 노리코는 루오의 판화집 ‘미제레레(=주여 불쌍히 여기소서)’에 감동받았다. 도판의 번호 중 33번까지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이야기를, 58번까지는 전쟁의 참상에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놓은 것을 보고 인식의 전환을 맞이했다. 그리고 1976년부터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주변의 부정적 시선에도 아랑곳없었다. 그리고 이 시를 썼다.

-이웃나라 언어의 숲

일찍이 일본어가 밀어내려 했던 이웃나라 말
한글
어떤 억압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한글
ゆるしてください(유루시테 쿠다사이) 용서하십시오
땀 뻘뻘 흘리며 이번에는 제가 배울 차례입니다.

진실을 말하는 용기 있는 사람은 이바라기 노리코 시인만이 아니었다. 일본 교사들 중 일부는 정부가 지시한 군국주의의 상징인 기미가요 기립 제창을 거부하다가 정직되거나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노리코 시인 역시 「시골의 노래」로 기미가요를 거부했다. 기미가요를 부르는 대신에 시골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민요를 부르자며.

침략의 피로 더러워지고/ 칙칙한 검은 과거를 남몰래 감춘 채 /입을 닦고 기립하여/

고대 그리스인처럼 시인에게 파레시아! 라고 외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억압 속에서도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하는 것을 ‘파레시아’라 하는데, 획일적인 무대에서 퇴장하거나 강요된 발언의 거부나 침묵도 다른 방식의 ‘파레시아’이다. 우리 정치 사회에도 절실히 요구되는 ‘파레시아’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나라 사법부가 ‘파레시아’의 별빛으로 어둠에 싸인 이 땅을 밝혀주었으면 좋겠다.

산문집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에는 고전을 섭렵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읽을거리가 풍성하게 차려져 있다. 저자인 진은영 시인의 해설과 안내는 책에서 소개된 많은 고전을 읽고 싶어지게 한다. 카프카, 버지니아 울프, 하이데거, 까뮈, 롤랑 바르트, 톨스토이, 니체, 릴케, 시몬 베유, 가스통 바슐라르 등등.
저자는 평범한 대부분의 독자에게 ‘독서란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독서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표현하고 있다. 릴케는 더욱 절실하게 말한다.
‘우리는 책에서 자신의 그림자로 흠뻑 젖은 것들을 읽는다.’
자신의 그림자로 흠뻑 젖은 것들을 읽고 나면 젖은 날개를 털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가 된 자신을 만날 것 같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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