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새해·설 덕담, 좋은 꿈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5년 01월 07일(화) 19:31
|
|
|  | | | ↑↑ 서병진 전 경주여고 교장 | | ⓒ 경북연합일보 | | 설 명절 전후에 좋을 꿈을 꾸라는 덕담을 많이 하고 받는다. 평소에도 젊은이에게 꿈을 지니도록 당부한다. 허황한 꿈이 아니라 부지런히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꿈을 지녀야 하고, 그 꿈의 실현을 위해서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덕담을 준다. 꿈은 잠 속에서 꾸는 꿈이라기보다 스스로 세운 삶의 목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설 전후에 좋은 꿈 많이 꾸라고 덕담할 때는 행운을 얻는 꿈과 세운 목표를 실천하는 꿈의 의미가 복합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후자, 누구나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 나가는 삶의 꿈을 말한다. 보통의 꿈은 잠을 자야 꾼다. 잠은 몸과 마음의 휴식 시간이다. 낮의 노동은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낳는다. 피로는 노동으로 쌓인 지친 피곤함이다. 몸과 마음의 피로를 필터링하는 것이 밤의 쉼이며 잠이다. 잠은 꿈을 동반한다. 잠자면서 꾸는 꿈은 숙면을 방해하므로 좋지 않다고 한다. ‘꿈’은 꾸는 것이다. 꾸는 것은, 뒤에 갚기로 하고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한편, ‘꾸미다’는 어떤 일을 짜고 꾀하다, 설계하다 라는 의미를 지닌다. 잠이 완전히 정신 줄을 놓아버린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난 일을 돌이켜 살피고 앞으로의 일을 꾸미는 것, 계획하는 것이 꿈이다. 잠의 시간을 꾸어다가 낮 동안에 시달린 마음을 걸러내고 참된 열매를 맺고자 여는 세상이다. 잠의 원리는 종교 사상의 근원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불교의 ‘버리기, 비우기’가 잠의 기능처럼 ‘참 나’를 걸러내기 위한 수행 방법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끊임없는 정신적 활동이다. 그런 삶의 정신 줄, 천만 가지 생각을 모두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참 나’와 상관없는 잡생각을 걸러내는 것이 불교의 ‘비우기, 버리기’인 것이다. 잠의 이면이 기도, 명상, 집중, 몰입 등의 방법과 통한다. ‘주기도문’이나 ‘반야심경’ 등의 주문을 외며 그 의미에 집중하여 잡념을 없애려고 몰입해 가는 과정이 꿈이다. 꿈은 무의식의 메시지. 꿈속에서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어렵다. 꿈은 일종의 가상적 현실이다. 가상현실 자체가 꿈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이 꿈을 꾸지 않았다면 가상 세계나 사이버 스페이스도 없을 것이다. 꿈은 직접 경험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최초로 경험할 수 있었던 가상 세계인 것이다. 그래서 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았고, 꿈을 분석하고 해몽하여 미래에 대한 일을 예측하려고 노력해 왔다. 프로이트도 꿈을 통한 사람의 심리상태나 정신적 트라우마를 찾아내는 정신분석학의 시초를 열기도 했다. 꿈은 현실을 반영하여 무의식적 소망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꿈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심리표출의 꿈, 사유 활동의 꿈, 계시적·예지적 꿈 등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태몽, 로또 복권 당첨, 각종 사고의 예지 등에 대한 꿈의 사례로 볼 때 ‘꿈은 미래를 예지한다.’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개꿈도 있다. 설 명절에 주고받는 덕담의 ‘좋은 꿈’은 이루고 싶고, 이룰 수 있는 삶의 목표여야 한다. 꿈이 없으면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활기찬 발전이 없다. 꿈이 경계를 넘으면 야망이 된다. 일장춘몽이나 일확천금의 꿈은 꾸지 말자. 살아가면서 잠을 잘 수밖에 없고, 꿈을 꾸어야 한다면 악몽보다는 길몽을 꾸고, 허황된 꿈보다는 끈질긴 노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꿈을 꾸자. 실천할 수 있는 꿈을 꾸자. “새해 좋은 꿈 꾸세요,” 묵은세배와 세배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탄핵정국의 우울함을 털고, 무안 공항 참사의 아픔을 보듬자. 제야의 종, 원단의 해맞이 행사가 없어도 꾼 꿈은 차근차근 실천에 옮기자.
|
|
|
경북연합일보 기자 - Copyrights ⓒ경북연합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최신뉴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