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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축제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5년 01월 06일(월)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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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서유진 소설가 | | ⓒ 경북연합일보 | | 2016년부터 어느 신문에 서평을 소설식으로 꾸며 칼럼을 써왔다. 실로 많은 책을 읽었는데 《염소의 축제》란 소설은 칼럼에서 제외했던 소설이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소설의 배경이 된 나라인 도미니카와 실재인물인 독재자 트루히요가 떠올랐다. 독재자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소설에 나오는 화자인 우라니아의 고통과 상처를 극복하는 의지가 지금의 나에게, 어쩌면 나라가 혼란한 지경에 처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아서다. 《염소의 축제》는 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역작이다. ‘염소’는 도미니카 공화국을 39년간 독재한 트루히요를 암살한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다. 일반적으로 트루히요의 애칭은 ‘병마개’이다. 그가 과시하며 달고 다니는 많은 훈장을 아이들이 모방하려고 병마개를 붙인 데서 생긴 별명이다. 소설의 서사는 간단하다. 트루히요에게 냉대받고 상원의원 위원장직에서 쫓겨난 아버지가 살아남기 위해 겨우 14세인 딸 우라니아를 제물로 바치려고 보낸다. 독재자 트루히요가 암살당하는 날, 나이 70에 이른 독재자가 전립선 고장으로 오줌을 흘리면서도 어린 소녀를 탐하러 가던 중이었다. 우라니아도 트루히요에게 먹잇감이 될 뻔했지만, 부실한 육체로 솟구친 절망과 굴욕감이 우라니아를 보내주게 했다. 우라니아는 곧바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암살 삼총사의 숨 막히는 두려움과 거사의 진행은 여기서 생략한다. 우라니아의 삶이 내게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우라니아는 미국에서 70세의 하반신 장애노인에게 《황폐한 집》이나 《파멜라》 같은 책을 읽어주는 알바를 했는데 후에 노인이 우라니아에게 청혼한다. 우라니아는 그때 트루히요를 떠올리며 떨었을 것이다. 인간의 끝없는 성욕은 이해하기 힘든 창조주의 자유의지 같다. 트루히요에게 자신을 성 노리개로 보낸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증오 때문에 30년도 더 소식을 끊었던 우라니아는 고국으로 돌아와 뇌졸중 후유증 중인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빠는 너무 오랫동안 수령님께 봉사한 탓에 양심의 가책이나 최소한의 청렴성, 최소한의 판단력을 상실했어요. 죽지 않으면서 역겹게 권력에 남아있을 수 있는 필수조건이었나요?” 짐승 같은 놈. 각하가 각료의 아내를 모조리… 뒷말은 하고 싶지 않다. 장관들이 오쟁이 진 남편이 되어도 다른 길이 없었기에 그걸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니! 우라니아는 늙은 아버지에게로 돌아와 수령이 엄마도 찾아왔는지 묻는다. “훌륭한 도미니카 여자들은 수령님이 사랑해 주면 황송해하면서 감사했어요. 그것이 바로 아빠가 사랑하던 수령님이 항상 하던 말이었어요.” 암살자 안토니오는 트루히요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하루 열두 시간을 일하고 두세 시간 잠을 잔 다음 청년들처럼 기운차게 하루를 시작하는 지칠 줄 모르는 원기 왕성한 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땀을 흘리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군복이나 턱시도 혹은 외출할 때 입는 옷에도 주름 하나 지는 법이 없다. 안토니오가 포섭된 후 나라를 변화시킨 인물이었다. 도로 교량 건설 공장을 짓고 정치 군사 산업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 상상을 초월하는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안토니오가 아무리 매력을 느껴도 존경으로 바뀌지 않았고, 다른 추종자처럼 비열하고 비굴한 사랑으로 바뀌지 않았다. 트루히요는 혁명군 용의자를 체포해서 거세하고, 고막을 제거하고, 집게로 손톱을 빼내거나 혀를 자르고 전기의자에 앉혔다. 무차별로 체포하여 감옥이 미어터졌다. 집권 29년 만에 지지자들도 공포에 떨게 되었다. 25년 전에 트루히요 신봉자가 아닌 사람이 있었던가. 비범하고 놀라운 정치인의 엄격하면서도 훌륭한 지도력 아래서 급성장하고 있는 나라의 겉모습 뒤에는 살해와 탄압과 기만이라는 잔혹한 현실이 있었다. 선전과 폭력을 통해 가공할 거짓말을 숭배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라니아는 말한다. “인생이란 살 가치가 있으며, 공부는 치료요법일 뿐 아니라 기쁨이며 가장 영광스러운 오락이다.” 우라니아는 공부에 대한 집념으로 고통을 이겨낸다. 그런 고통은 우리에게도 진행 중이다. 나의 독서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타고르의 명언은 우라니아의 치열한 인내의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문구인 듯하다. “펼쳐진 책은 말하는 머리이며, 닫힌 책은 기다리는 친구이고, 잊힌 책은 용서하는 영혼이며, 망가진 책은 우는 가슴이다.” 우라니아를 이해할 것 같다. 고독한 인간은 책으로 위로받는다. 부조리하고 의혹투성이인 인간의 마음으로 고통받는 자가 어떻게 고독과 싸우며 자신을 지탱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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