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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퉁이돌’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5년 01월 02일(목) 11:02
↑↑ 서유진 소설가
ⓒ 경북연합일보
벽돌로 만든 우리 집이 세찬 바람에 무너질 것 같았다. 닫히지 않으려고 버티던 강철 현관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오후 4시에 강풍주의보가 발표되었다.
집의 기둥을 떠받치는 모퉁이돌(주춧돌)이 견고하면 아무리 바람이 세게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는다. 집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모퉁이돌의 견실함에 승패가 달려있다.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모든 분야에 통용된다. 수식에 맞게 풀었지만, 기초 연산 훈련이 안 된 학생이 실수로 시험을 망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현대무용에서는 기본 동작(플리에, 바트망, 데벨로페 등)의 선이 아름답지 못한 핸디캡 때문에 중도 포기하는 무용가도 있다. 기본이나 기초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절박하고 심각하게 우리의 뇌와 가슴을 찌르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잉글랜드 프로축구 기성용 선수의 예는 어떤가?
기성용 선수가 영국 뉴캐슬 팀에 있을 때 어떤 재활 전문 교수가 무릎 통증을 낫게 해주었다. 교수가 영국으로 건너가서 선수의 몸을 살펴보니 발 기능이 약했다. 그는 지면에 닿는 가장 근간이 되는 발을 훈련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발에는 33개의 관절이 있고 34개의 근육이 있다. 발은 디딜 때와 걸을 때 충격흡수제 역할을 하는데 사람들은 이 점을 방치하고 있다고 한다. 무릎이 안 좋은 사람은 발을 훈련하면 좋아진다. 허리 디스크 환자가 수술을 하지 않고 허리 근력을 키우는 것과 같다.
그 교수는 ‘가장 근간이 되는 발’이라 했다. 우리 인간의 삶에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괴테는 말했다. 인생은 사랑이며, 생명은 정신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인간은 정신이라 했다. 또 몽테뉴는 《수상록》에 이렇게 썼다.
‘이 정신에게는 어떤 문제에 전념하도록 제어하고 강제하는 일거리를 주지 않으면 이런저런 공상의 막연한 들판에서 헤매게 된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이 시대는 정치와 사회, 경제와 문화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양심과 부끄러움을 상실하기를 기꺼이 마다하지 않는 시대이다. 인간이기에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했는데 인간임을 포기하고 인간 스스로 짐승과 인간을 동격화시키는 일을 자행한다. 그것을 용기 있는 태도라 생각한다. 비정상의 일반화 경향이다. 미셸 푸코가 쓴 《광기의 역사》에서 읽은 문장이 떠오른다.
환각은 ‘비정상적이고 잘못된 상상력이 주요 증후인 질병’이고, 비정상은 ‘취향이나 의지의 타락’이다.
한 인간의 비정상적 취향과 의지의 타락에 대해 같은 인간으로서 정죄하거나 차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신의 창조질서, 또는 자연의 창조질서를 깨뜨리는 비정상이 정상으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 이런 맥락에서 엄청나게 많은 어록 중에 《루이 14세의 세기》에 밝힌 볼테르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내가 후세를 위하여 기술하려고 하는 것은 한 개인의 행동이 아니고, 그 시대 사람들의 정신이다.’
그 시대 사람들의 정신이라는 점에 주목해 볼 때 우리 시대는 어떤가? 유럽에서부터 싹터 온 타락의 씨앗이 대양을 건너와 이 땅에 뿌려졌다. 서서히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퇴폐적 기형의 씨앗이 이 땅에 뿌리 내리는 것을 경계해야 할 사람은 이 시대 사람들이다. 이것이 세계의 조류이고 새 시대의 흐름이라며 관망만 한다면 우리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큰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부패와 멸망과 죽음의 악취가 우리를 잠식하고 있다. 이 위기에서 우리를 지켜줄 모퉁이돌은 무엇인가? 잘못된 사상과 타락한 문화의 광풍에서 끄떡 없이 버틸 수 있는 삶의 근간은 무엇일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모두 인간 정신이라고 힘주어 말할 것이다. 인간 정신은 바로 인간 존재의 모퉁이돌이다. 무릎을 고치기 위해 발을 강화하듯 이 시대의 통증은 인간 정신으로 이겨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 내면의 모퉁이돌이라 할 수 있는 정신, 이 시대의 정신은 무엇으로 훈련시켜야 하나? 인간의 뇌와 가슴은 가만 내버려두면 즉물적이고 이기적이며 표피적인 자극과 재미와 쾌락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본성이 있다. 그 본성을 정화시키는 일은 좋은 책을 읽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연간 독서량은 1인당 0.8권으로 미국, 프랑스, 일본이 6권인 것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많은 사람이 운동으로 허리 근육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게으르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또는 현상 유지를 할 만하니 절실함을 느끼지 못해 운동을 하지 않는 것처럼 독서가 정신을 강화 또는 정화시킨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우리 국민은 책을 읽지 않는다. 학생들과 취준생들은 시험공부에 시달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한다. 요즘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이 몰입하는 것은 오로지 핸드폰이다. 종이책과 인터넷상의 독서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인터넷으로는 정신 활동의 확장이나 정보 습득에 한계가 있지 않은가? 어느 가수가 온다고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십 대들의 풍경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었다. 그들의 열정이 독서로 옮겨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고 모든 책이 다 훌륭해서 우리 정신문화를 고양시키는가?
정신을 타락시키는 책, 잘못된 사상과 이데올로기로 학생들의 역사의식을 편향되게 몰아가는 책은 이 땅의 순수한 영혼들을 더럽힌다. 양서가 아니라면 정신을 고양시킬 수 없고 이 시대의 정신문화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게 나의 굽힐 수 없는 주장이다.
국어사전에서 양서(良書)란 교훈적이고 건전한 책이라고 했는데 유의어인 선서(善書)가 더 의미가 좋다.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책이다. 법정스님은 양서란 거울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 거울을 보고 나 자신의 모습을 읽어내야 한다.
예술문화의 창조자들에게도 막중한 책임이 있다. 건전하지 못한 퇴폐와 타락의 씨앗을 뿌리는 자들은 각성해야 한다. 그들이 피땀 흘려 창조한 작품이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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