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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헤르만 헤세’를 생각할 때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4년 12월 17일(화) 19:19
↑↑ 서유진 소설가
ⓒ 경북연합일보
의료대란과 계엄과 탄핵의 냉기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우울한 마음으로 어둑한 하늘을 바라보는데 헤르만 헤세가 떠올랐다. 그가 내게 묻는 것 같다.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동그란 안경테를 낀 그의 눈은 고뇌에 차서 우리를, 아니 이 땅을 응시하고 있는 듯하다. 심각한 우려의 눈초리에서 영명한 기가 흘러나왔다. 그의 사후 52년이 지난 지금, 그가 꾹 다문 입술을 열어 다시 묻는 것 같다. 지금, 당신은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그의 고뇌 역시 우리의 고뇌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유리알 유희》라는 장편소설로 1946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는 독일 조국과 자신의 국민에게 배척당한 상처가 컸다. 모든 독일 국민은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군국주의를 동조했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를 지지했다. 국민이 히틀러를 선택했고 국민이 히틀러를 전쟁괴물로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전에 아무도 나서지 않았던 독일에 헤세가 있었다. 헤르만 헤세! 욕망과 혼돈과 악이 그 땅에 도래했기에 그는 평생 고뇌했다.
1877년 독일 남부 칼브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헤세는 신앙 가문의 의무를 지켜나가려고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곧 뛰쳐나왔다. 그는 네 살 때부터 뛰어난 지력과 의지와 억누를 수 없는 창조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속박에 견딜 수 없었다.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일반학교에서도 퇴학당하고 17세 때 시계공장 견습공으로 취직했다. 그러나 방황과 탈선과 절망 속에서도 문학에 대한 열정은 커져만 갔다. 이미 14세 때 시인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는 시계공장의 일을 그만두고 대학촌의 서점에서 일하며 고된 생활 속에서도 여가에 시와 작품을 씀으로써 문학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러 편의 작품이 성공하고 이후 작가로서의 이름을 얻었지만, 독일 조국과 국민과 문단은 그를 조국의 배신자로 비난했다. 매국노라고 언론의 지탄을 받고, 모든 저서는 판매금지와 출판금지 처분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조국 독일의 군국주의가 일으킨 제1차 세계대전 때도, 히틀러의 나치즘이 광분하던 2차 세계대전 때도 전쟁을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평화주의자인 그는 혼자 외롭게 싸우며 말했다.
“전쟁이 유용한 점은 단지 ‘사랑은 증오보다, 이해는 분노보다, 평화는 전쟁보다 훨씬 고귀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뿐이다.”
조국과 국민에게 버림받은 헤세는 부친의 사망과 아내의 정신분열증, 막내아들의 질병에 에 이어 자신도 정신과 치료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그의 남은 삶과 문학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헤세는 《유리알 유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리는 분명 있네. 그러나 자네가 바라는, 절대적이고 완전하고 그것만 있으면 지혜로워지는 가르침이란 존재하지 않아. 자네는 완전한 가르침이 아니라 자네 자신의 완성을 바라야 하네.”
세계대전의 역사를 지나고 본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헤세의 조국 독일과 국민은 헤세에게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다.
헤세는 인류 최대의 비극을 몰고 온 정신적 문제를 10여 년에 걸쳐 집필한 마지막 역작 《유리알 유희》에 풀어놓았다. 유리알 유희는 생각의 유희이다. 이 유희를 통해 예술과 학문의 극단성을 멀리하고 삶의 균형과 조화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투쟁의, 또는 이념의, 또는 생각의 극단성이 빚어낸 세계대전에서 조화와 균형을 찾아 나서야만 했던 사람은 위정자와 히틀러의 주동에 동조한 독일 국민 전체였고 개개인이었다. 진실이 밝혀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헤세의 외로운 진실과 거룩한 용기가 지금의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평화주의자가 매국노로, 악이 선으로,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심은 대로 거둔다니 우리 조국 역시 나 개인부터 극단의 씨를 뿌리지 않기를, 조화와 균형의 씨를 뿌려 이 땅에서 싸움과 증오가 물러나고 이해와 사랑의 열매가 맺히길 공의로운 신께 간구 드린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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