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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소멸론에서 국가론으로
이상직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3년 06월 14일(수)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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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인구위기’라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쓰인다. 지금과 같은 저출산 추이가 지속되면 대한민국이 소멸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러한 ‘위기론’은 인구 변화 현상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그에 따라 우리 사회가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변화를 막고 갈등을 부추긴다. 한국사회에서 위기가 아니었던 때는 없었다. 적어도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위기’라는 말을 해 오면서 일관되게 발전주의 전략을 추진해 왔다. 위기 강조는 보통 그 문제를 직시하고 풀기 위한 맥락에서 제기되기보다 기존 체제의 변화를 막으려는 목적으로, 변화 비용을 사회화하려는 의도에서 제기된 경우가 많았다. 기존 방식의 성장사회를 전제한 오늘날의 위기론도 성격이 그리 다르지 않다. 위기론의 근거로 제시되는 장기 시나리오도 특정한 시각을 전제로, 현 상황의 지속을 가정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기보다는 성장에 대한 일면적 이해에 근거해 막연한 공포감을 조장한다. 출산율 저하 경향을 추동한 것은 ‘발전주의’라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체제였다. 발전주의라는 말을 꼭 비판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GDP 증가와 사회이동으로 요약되는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보고자 한 희망이 담겨 있었다. 한국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세계 평균으로 보면 합계출산율은 1960년대 후반과 1980년대 후반 두 시점에서 두드러지게 하락했다. 첫 번째 시기에서 경구 피임약 보급이 출산율 하락의 주요 요인으로 꼽히지만, 근본 요인은 발전주의 체제의 세계적 확산이었다. 서구가 제시한 발전 전략에서 핵심은 인구억제였고, 그 수단으로 가족계획이 세계 곳곳에서 시행되었다. 1980년대는 냉전 체제가 해체되면서 국제이주 양상이 급변했던 시기다. 발전주의 체제 확산의 제2물결의 시기였다. 이들 두 차례의 발전주의 확산으로 전 세계적으로 개인당 평균 출산아 수는 줄곧 줄어 왔다. 한국 사회는 인구를, 생명을 여전히 생산인구나 부양인구로, 인력 문제로만 생각한다.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 논의하지 않고 무턱대고 인구절벽이니 인구소멸이니 하는 말로 사람들의 욕망과 두려움을 부추긴다. 한편에서는 개인주의적 논리가 국가화된 담론을 냉소하고 있다.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말로, 출산은 비용이고 부담이라는 말로 출산 행위를 전적으로 개인화된 계산의 영역으로 규정하는 분위기도 만만찮게 있다. 이러한 담론 구도에서 아이를 낳는 일은 애국이 아니면 개인의 삶의 질 문제가 되어 버렸다. 둘 모두 공유하는 전제가 있다. 계산화된, 도구화된 논리로 출산을 본다는 것이다. 기존의 두 관점 모두 돌봄 관계에서의 불평등이나 부정의를 근본적으로 직시하지 못한다. 두 관점 모두에서 빠진 것은 사회에 대한 어떤 상상력이다. 생명을 도구적 대상으로 보는 것에서 탈피해 생명을 보살핀다는 관점에서 보편적인 정책의 논리를 상상해 보면 좋겠다. ‘취약한 생명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 ‘서로 돌보는 사회관계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정책적 상상을 해 보았으면 한다. 많은 정책이 경쟁을 강화하려는 관점에서 시행되고 있다. 대상자들에 한정한 현금 지원을 주된 도구로 한 출산 정책은 더이상 보편 정책도 아닐 수 있다. 특정 맥락에서는 불평등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더욱 많아질 출산하지 않은 이들의 동의를 얻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정책의 메시지를, 지원의 메시지를 생명 도구화에서 생명 존중으로, 경쟁력 강화에서 연대감 강화로 바꾸어 담아낼 필요가 있다. 인구정책이라는 것을 말할 수가 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응 정책이고, 기획 정책이다. 생산인구 중심의 연령-역할-규범 체제를 다시 짜는 문제는 기존의 틀을 고수하는 한 혼란과 불안 요인이겠지만 성장과 공급, 확충을 목표로 숨 가쁘게 달려오는 가운데에 왜곡된 사회 시스템을 재편하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혁신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돌봄의 문제, 국방의 문제, 교육의 문제, 주거의 문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전환의 방향과 방식을 논의해 가면 좋겠다. 구체적인 맥락에서 인구 규모와 구성 변화를 관측하고 관련 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결국 인구 현상 변화의 실질적인 내용을 만들어 가는 것은 정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발전주의와 민주주의가 나름의 공생 관계를 맺었던 시기가 지난 오늘날 어떠한 사회경제적 체제를 상상해 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공허한 국가주의와 냉소적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 나름의 정치 공동체의 모습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국가주의적 관점에서건 개인주의적 관점에서건 공유하는 인구위기론에서 시사하는 정치 공동체의 모습은 생존공동체 이상이 아닌 것 같다. 국가주의를 넘어선 공동체의 비전과 개인주의를 넘어선 자유주의의 비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정치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쓴 국가 공동체의 의미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국가는 같은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단순한 공동체가 아니며, 상호 간에 부당 행위를 방지하고 교역을 촉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국가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 조건들이다. 그러나 그런 조건들이 다 충족된다 해서 국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란 그 구성원의 가족들과 씨족들이 훌륭하게 살 수 있게 해주기 위한 공동체이며, 그 목적은 완전하고 자족적인 삶이다. 이런 것들은 우애의 산물이다. 함께 살겠다는 의지야말로 다름 아닌 우애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목적은 훌륭한 삶이며, 앞서 말한 것들은 이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국가는 완전하고 자족적인 삶을 위한 씨족들과 마을들의 공동체이다. 그리고 완전하고 자족적인 삶이란 행복하고 훌륭하게 사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국가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은 모여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훌륭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우리는 공동체 자체의 소멸을 말하기 전에, 민주주의의 오래된 의미와 새로운 의미를 계속해서 확인하고 만들어 가야 한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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