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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사는 법
정석준 불교 법사,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3년 06월 08일(목)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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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삶을 보는 견해에는 여러 가지 주의, 주장이 있다. 라이프니츠는 그의 저서 ‘형이상학서설’에서 “세계는 정신적인 단자의 집합으로 예정․조화된 완미한 최선의 것”이라고 하여 낙천주의를 주창했다. 이에 대해 쇼펜하우어는 인생을 아주 염세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는, “서 있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것이 더 편하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누워 있는 것이 더 편하고, 누워 있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더 편하다”라고 말했다. 그가 살던 시대에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아 자살하는 자가 속출하였다고 한다. 현대 철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실존주의에서는 삶의 본질을 불안․고독․모순 등으로 파악했는데, 하이데거 같은 철학자는 “삶은 불안하다. 왜 불안한가? 그것은 죽음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고 야스퍼스는, “나는 결국 나 혼자 일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삶을 죄악으로 보았다. 신이 태초에 인간을 창조할 때엔 선(善)이었는데, 아담과 이브가 신의 계명을 어김으로써 인간은 원죄를 지닌 죄인이 되었다고 한다. 부처님은 삶을 괴로움(苦)으로 보았는데, 이에 대해 사람들이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인생에는 즐거움도 있기 때문이다. 젊음과 희망, 사랑도 괴로움인가? 물론 그것이 기쁨일 수 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인생의 젊음이나 희망, 사랑은 이윽고 사라지고 오히려 괴로움의 한 양상이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리하여 인생은 괴로움이라고 단정하며, 이것 없이는 불교의 기초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괴로움(苦)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아기가 태어날 때 우는 것도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모의 고통에 못지않게 태어나는 아기도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울면서 시작한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젖먹이 때도 울음을 그칠 날이 드물고, 조금 철이 들면 갖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지만 뜻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다. 누구나 건강한 삶을 바라지만 병마는 예고 없이 찾아 들고, 항상 청춘이기를 바라지만 무상살귀는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찾아와 저승으로 끌고 간다. 부처님께서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괴로움으로 태어나는 괴로움(生), 늙어 가는 괴로움(老), 병드는 괴로움(病), 죽음의 괴로움(死)을 드셨는데, 이 네 가지 괴로움(生老病死)을 근본 4고(四苦)라고 한다.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愛別離苦), 미워하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치며 살아야 하는 괴로움(怨憎會故), 구하고자 하나 얻지 못하는 괴로움(求不得苦), 오음(五陰, 五蘊)이 치성하여 일어나는 괴로움(五陰盛苦)을 합하여 팔고(八苦)라고 한다. 그러나 중생들의 괴로움이 어찌 이 네 가지, 여덟 가지만 되겠는가? 중생의 번뇌가 팔만사천이라면 괴로움도 팔만 사천 가지이며, 팔만사천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인 의미로써 한량없이 많다는 뜻이다. 이처럼 우리의 괴로움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가? 불교가 단순히 인생을 괴로움이라고 말한다면 불교는 하나의 철학이나 사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을 증득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불교는 철학이면서 고등종교인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으로 고(苦)·집(集)·멸(滅)·도(道)의 네가지 진리의 가르침(四諦)을 펴셨다. 고제란 앞서 말한 인생은 괴로움이라는 진리이다. 집제란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진리이다. 부처님께서는, “후유를 일으키고 기쁨과 탐심을 수반하며, 이르는 곳마다 그것에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괴로움의 원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괴로움의 원인으로 지적된 것이 갈애이다. 갈애란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강렬하게 타오르는 인간의 욕망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부처님께서는 욕망,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셨다는 점이다. 부처님께서 배격한 것은 ‘그릇되고 지나친’ 욕망이었다. 멸제란 괴로움이 없는(사라진) 진리를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갈애를 남김없이 멸하고 버리고 벗어나서 더 이상 집착하지 않을 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하셨다. 도제란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에 대한 진리인데, 부처님께서는 그 방법으로 중도(中道), 즉 팔정도(八正道)를 제시하셨다. 팔정도는 정견(바른 견해)·정사유(바른 생각)·정어(바른 말)·정업(바른 행위)·정명(바른 생활)·정정진(바른 노력)·정념(바른 기억)·정정(바른 정신통일)을 말한다. 사제(四諦)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인생은 괴로움이다(苦諦). 그 괴로움에는 원인이 있다(集諦). 그 원인을 없앨 때 인간은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며(滅諦), 행복하게 사는 길이 있다(道諦)”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기도도 없고 예배도 없다. 오직 현실을 직시하고 올바른 실천 수행만이 요구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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