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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와 민족주의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3년 05월 21일(일)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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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디즈니에서 새로 제작하는 실사영화 인어공주, 백설공주의 주인공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혹자는 “이런 논란 자체가 인종차별적인 편견이다, 새 영화는 오랫동안 백인들의 편견으로 장악해 온 비뚤어진 미학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라고 평가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런 주장은 억지다, 언제부터 디즈니가 그렇게 사회정의와 공익을 생각하는 회사였느냐, 노이즈 마케팅이거나 극단적 PC 사상에 문화계가 오염된 결과”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은 이 주제에 앞서서 왜 하필 디즈니의 공주들이 이런 논란의 중점이 되었는가에 주목해 보겠다. 오늘날 영화계를 제패한 디즈니사의 영광은 공주들이 이뤄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주 신드롬의 첫 번째 주자가 백설공주이다. 야코프 그림(1785~1863)과 빌헬름 그림(1786~1859)은 독일 민화 속에서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엄지 공주, 신데렐라, 빨간 모자, 헨델과 그레텔 등 수많은 이야기를 발굴해 디즈니 공주들의 소스를 제공했다. 디즈니의 성공 이전에 그림 형제의 동화는 말 그대로 동화라는 새로운 문학장르를 탄생시켰고, 세계인의 동화가 되었다. 하지만 그림 형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동화 작가가 아니었다. 그림 동화도 오리지널 버전은 어린이용이라기에는, 아니 성인 버전이라고 해도 받아들이기 힘든 끔찍하고 그로테스크한 설정과 스토리로 가득하다. 그런 형제가 왜 이런 컬트한 세계에 빠져들었을까? 어린이의 정서나 교육과는 무관한 진지하고 거대한 배경이 있다. 18세기 유럽은 부르주아와 민중이 절대왕정을 무너트리면서 국민국가, 민족국가라는 새로운 국가개념이 자리 잡는다. 신분제에 기반한 왕과 귀족의 국가가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국가는 그 구성원으로 ‘국민’이라는 주체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이 국민에게 좀 더 일체성을 강조하는 개념을 없을까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당시 유럽의 강대국은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며 그 안에 수많은 나라와 민족을 포함한 제국이 되어 있었다. 제국이 아시아-아프리카의 약소 국가만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18세기에 유럽은 짧았지만 나폴레옹의 제국에 통합되는 경험을 했다. 왕과 귀족의 국가에서 국민의 국가가 되자 국가 간의 경쟁은 더 치열하고 격렬해졌다. 국민의 결속, 국민의 정체성, 우리는 같은 국민이라는 자각이 전쟁과 경쟁, 국가 생존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국가의 기준으로 민족이란 개념이 제일 정치하게 발달한 곳이 독일이다. 1807년 애국적인 청년 철학자였던 피히테는 프로이센 학술원 강당에서 훗날 민족주의 민족국가 이념의 정수가 될 열변을 토했다. 이때의 강연을 묶어서 낸 책이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다. 당시 프로이센은 나폴레옹에게 패해 나폴레옹 제국의 속국이 됐다. 이 충격을 극복하고 독일의 재건을 위해 피히테는 우수한 독일민족이란 복음을 설파했다. 독일인은 세계 그 어떤 민족보다 우수한 민족이다. 민족에는 우등민족과 열등민족이 있다. 국가의 강약은 민족의 강인함, 우수성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가 지금 불운을 겪고 있지만, 민족과 국가 간의 이 단순한 함수관계를 자각하고, 독일인이 단결한다면 우리는 부흥하고 승리할 것이다. 이런 주장을 설득력 있게 하려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때 피히테가 꺼내든 증거물이 언어였다. 언어가 민족의 기준이 되며, 언어가 민족의 우수성의 기준이 된다. 창의적인 민족, 과학적인 민족이라면 언어도 창의적이고 과학적일 수 밖에 없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우리도 학창시절에 많이 듣던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그렇다. 한국의 민족주의 교육, 국민교육헌장에 실린 이야기는 피히테의 주장과 독일 민족주의의 논리와 많이 닮았다. 그것이 독일의 논리를 차용한 것인지, 우리도 단일민족이라는 의식이 강한 나라였기에 우연히 닮은 것인지는 판단에 맡긴다. 게르만족의 나라, 게르만어의 나라라는 개념은 이처럼 오랫동안 분열되어 살아온 독일인은 하나로 만들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그림 형제가 독일어 사전 작업에 몰두한 이유도 하나의 민족, 언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처럼 언어가 통합과 민족의 잠재적 역량을 판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자 언어가 지닌 또 하나의 매력이 떠올랐다. 그러면 백설공주와 친구 공주들은 독일의 혼을 보여주는데 성공했을까? 이 충격적 스토리들은 민족의 숨은 역량을 드러내기는커녕 지성과 도덕성을 의심하게 한다. 동화가 드러낸 사실은 민족의 순수한 핵이 아니라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야수성이다. 백설공주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실패했지만, 다른 가능성을 주목받아 동화라는 새로운 장르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백설공주의 실패와 무관하게 민족과 언어에 대한 환상. 민족주의의 치졸한 감상은 훌륭하게 살아남았고 번성한다. 민족주의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는 근대의 필연이고 분명한 역사적 사명이 있다. 하지만 강력한 치료제일수록 부작용과 오용을 경계해야 한다. 민족이란 본래의 사명과 떨어져 나왔던 공주들이 갑자기 다시 인종차별과 편견의 대상이 된 건 아이러니일까? 운명의 장난일까? 하지만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 그림 형제도 몰랐던 백설공주의 진짜 탄생 배경이 도시에서 태어나 국제화와 도시와 함께 성장했다는 것이 오늘날 정치적 올바름의 타깃이 된 이유이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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