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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산 지역의 문화유산 ⑤
정석준 신라문화전문해설사,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3년 05월 18일(목)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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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그렇다면 견훤의 침략을 받고,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구제할 힘을 상실한 신라는 최후의 수단으로 이곳 포석사에 모신 호국영령(護國英靈)들의 힘을 빌려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자 제사를 지내다가 참변을 당한 것은 아니었을까? 경애왕의 뒤를 이은 경순왕은 천년동안 지켜 온 나라를 고려에 바치고 만다. 왕건은 “경사가 났다”고 하여, 서라벌의 지명을 경사 경(慶), 고을 주(州)자를 써서 경주로 고치고, 김부(경순왕)에게 식읍으로 하사했다고 한다. 경주라는 지명이 고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나라를 송두리째 바쳤으니 경사스러운 고을일지 몰라도, 이곳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자랑스러운 이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경순왕이 한 번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천년 사직을 고스란히 고려에 바친 것을 두고, 말들이 많지만, 포석정의 참극을 겪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라를 지킬 힘을 상실한 신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천년 사직의 비극을 간직한 포석정지에는 화려했던 이궁(離宮)의 모습도, 낙화처럼 무참하게 떨어진 아릿다운 궁녀들의 모습도 찾을 길이 없으나,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던 포형(鮑形)의 돌 홈만은 그대로 남아 이곳을 찾는 이에게, 그 옛날의 영화와 비극을 동시에 말해주고 있다. 옛부터 포석정지에는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천년 사직의 슬픈 전설을 시문(詩文)으로 남기기도 하고, 풍광명미(風光明媚)에 매료돼 화폭에 담기도 했는데, 그 중 매월당 김시습의 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가을 바람에 잎지고 풀섶은 어지러운데 일찍이 신라왕이 이곳에 연락(宴樂)하였지 고울(高鬱)이 어찌 승냥이와 호랑이 들어 온 줄 알겠으며 공산(公山)에 그 뉘 육용(六龍)이 지친 줄 알았으랴. 들꽃 피고 지니 나무를 보아도 마음 아프고 산새 지저귀니 숲 속 가지마다 한이 스미는 구나. 돌 틈 작은 시냇물 슬프게 울부짖으니 천고에 들리는 나그네 시름을 더하누나.[매월당집 권12]
◇배리석불입상 : 이 불상들은 모두 어린아이처럼 귀엽고 천진한 미소를 띠고 있는 매우 친근한 부처님이다. 신체 비례도 거의 5등신에 가깝다. 아마 불교가 유입된 초창기에 만들어져 부처의 위엄보다는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하기 위해 우리 모습과 같이 조성됐다. 중앙의 불상은 본존불이고, 양옆은 협시보살이다. 본존불의 얼굴은 네모에 가까운 넓고 통통하고 반원형의 눈썹이 커다랗게 표현됐다. 천진스럽게 웃는 두 눈과 뭉퉁한 코, 두툼한 입술, 그리고 통통한 뺨에 어린아이와 같은 미소가 있다. 이마에는 백호가 있고, 옷은 두텁고 굵은 옷주름이 대칭을 이루며 U자형으로 내려오고 있다. 몸은 거의 굴곡이 없이 일자로 내려온다. 이 본존불은 광배부터 대좌까지가 한 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옷주름 아래 나란히 까치발을 하고 있다. 고신라 불상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 부처님의 손모양을 수인(手印)이라 하는데, 우리가 문서에 도장을 찍는 것처럼 부처님은 손 모양으로 약속을 표시한다. 본존불의 오른손은 손바닥을 모두 펴 위로 치켜든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시무외인, 왼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해서 편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여권인을 하고 있다. 좌우 보살상은 손에 정병을 꽉 움켜잡고 있는 관세음보살이다. 몸은 뻣뻣하게 뒤로 치켜서 당당하게 서 있다. 얼굴은 햇님처럼 방긋 웃는 모습이고, 넓고 둥근 얼굴에 비해 작고 가늘게 표현된 눈과 코앞으로 살짝 내민 입술이 귀엽다. 머리에는 관대를 두르고 삼면보관으로 장식했고 광배에는 아무런 무의가 없이 둥글게 돼 있다. 상반신에는 천의만을 들고 있고, 옷 주름도 거의 생략돼 있으며, 발 모양은 본존불처럼 까치발인데 왼쪽 발이 약간 휘어져 변화를 주었다. 좌우의 보살상은 이중의 연화대좌위에 서 있는데, 목에서 다리까지 드리워진 구슬목걸이를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있으며, 왼손에는 연꽃봉우리를 들고 있다. 팔찌 비천를 하고 있으며, 관대를 두르고 머리에는 삼면보관으로 장식돼 있는데, 정면에 큰 연꽃이 조각돼 있다. 광배는 가장자리에 두 줄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화불 다섯 분이 조각돼 있다. 광배에 화불은 부처님한테만 나타나는데 유일하게 보살상에 표현돼 있다. 본존불에 비해 가늘게 표현된 눈과 통통한 뺨에 앳된 미소가 흐르고 있다. 어깨에서부터 발등까지 늘어뜨린 영락은 수슬과 꽃모양으로 장식됐는데, 이것은 6C 말부터 7C 초에 걸쳐 유행된 중국 수나라 양식이다. 옆에는 옥으로 장식된 대패를 차고 있다. 조각 수법으로 보아 양옆의 두 분과 달리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다. 뒷모습까지도 사실적으로 조각돼 있으며 채색했던 흔적도 남아 있다. ◇삼릉 : 남산에 골짜기 이름이 붙여진 곳이 50여 곳이 있는데, 삼릉이 있는 계곡을 예전에는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분다고 냉골이라 했는데, 지금은 3분의 왕릉이 있는 골짜기라고 해서 삼릉계라 불리어지고 있다. 신라가 천년동안 임금님이 56분이 계셨는데 박씨가 열분, 석씨가 여덟 분 김씨가 서른여덟 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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