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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산 지역의 문화유산 ④
정석준 신라문화전문해설사,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3년 05월 11일(목) 19:10
ⓒ 경북연합일보
그런데, 오늘 와서 보니 무덤을 전부 옮기고 소나무를 제거하는 등 주변을 깔끔하게 잘 정비해 놓았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경주시는 많은 관광객이 쉽게 찾아 올 수 있도록 창림사지 앞 도로를 2차선으로 확장하고, 주차장도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 만시지(晩時之歎)의 감이 없지 않으나 시민의 한사람으로 큰 박수를 보낸다.
◇포석정지 : 포석정지가 있는 이곳 서남산은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아마도 서남 산의 맑은 물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삼아 이곳에다 정자를 지었지 않았을까 한다.
포석정(혹은 포석사)의 포(鮑)는 전복 포자인데, 포석정의 돌 홈 모양이 마치 전복껍질모양과 같다고 해서 포석정이라고 명명(命名)했다고 한다.
포석정하면 정자(亭子) 형식의 건물일 것이라 생각이 들지만, 건물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으니 아쉽기가 그지없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즐기던 돌 홈(曲水渠)만이 덩그렇게 남아 있을 뿐이다. 전복형상의 돌에 물이 흐르게 하고 술잔을 띄우면 물의 양이나 잔의 형태, 잔속에 담긴 술의 양에 따라 가다가 멈추고, 멈추었다가 다시 가는데(일종의 회돌이 현상), 잔이 흐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곡수거(돌 홈)의 전체 길이는 22m인데 가장 긴 세로축이 10.3m이고, 가로축이 5m이며, 깊이 50Cm 가량의 도랑이 나 있는데, 모두 63개의 석재로 조립돼 있다.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은 중국 진나라 때의 명필가인 왕희지(307~365)와 그의 벗 41명이 난정이라는 곳에 정자를 세우고 개울물에 몸을 깨끗이 씻고 결제사를 올린 후,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올 때까지 시를 읊는 놀이에서 비롯됐는데, 이때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 3잔을 마시면서 즐겼다고 한다.
포석정은 이를 본 따서 만든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몸을 깨끗이 씻고 결제사를 올렸다고 하는 것을 보면, 유상곡수연은 단순히 풍류를 즐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제례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아진다.
1975년 3월부터 이듬해 말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안압지 발굴 조사를 했는데, 수 천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에는 참나무로 만든 14면체 주사위(주령구)도 있었는데, 이는 귀족들의 놀이기구로 한 면에 씌어진 글의 내용에 따라서 ‘소리 내지 말고 춤추기’, ‘술 다 마시고 크게 웃기’, ‘술 석잔 연달아 마시기’ 등의 놀이를 했다고 한다.
이로써 미루어 볼 때 당시 신라 상류사회가 얼마나 풍류를 즐겼는지 단편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
중국에서 시작한 유상곡수연은 이웃 일본에서도 있었으나 오늘날 그 자취가 남아있는 곳은, 이곳 경주 포석정이 유일하다고 한다.
포석정지 바로 위쪽에는 배상지라고 부르는 못이 있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물을 포석정으로 끌어들여, 큰 돌거북의 입을 통해 뿜어 나오게 하고, 다시 돌 홈으로 흐르게 했다고 한다.
이 돌거북이 조선말엽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조상들이 남겨준 위대한 문화유산을 후손인 우리가 제대로 지키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부끄럽고 송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포석정은 일제강점기 때 보수돼 원래의 모습과 많이 변형돼 버렸으므로, 하루 빨리 고증을 거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포석정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신라 49대 헌강왕 이전에 지어진 것만은 틀림없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헌강왕이 포석정에서 신하들과 항연을 베풀었는데, 산신이 홀연히 나타나 춤을 추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좌우신하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왕만 홀로 이 춤을 보았다. 신하들의 재촉에 의해서 왕이 다시 춤을 추니 그 춤을 어무상심(御舞祥審)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 춤은 고려시대까지 유행했다고 한다.
포석정하면 떠오르는 왕이 있다. 바로 신라 55대 경애왕이다.
경애왕 4년(AD 927) 9월, 후백제 견훤이 고을부(지금의 영천)를 점령하고, 호시탐탐 서라벌을 노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신라는 고려 왕건에게 구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구원병이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그해 11월(陰), 견훤이 불시에 서라벌로 쳐들어 왔다. 이때 왕은 비빈 종친들과 함께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며 놀고 있다가 갑자기 적병들이 들이 닥치는 바람에 포석정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유상곡수는 핏물로 바뀌었다는 슬픈 이야기를 ‘삼국사기’는 전하고 있다.
그런데 ‘삼국사기’의 기록처럼 견훤의 군사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 앞에서 더구나 엄동설한에, 어떻게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며 유흥을 즐길 수 있었을까?
최근 발견된 ‘화랑세기’ 필사본에 의하면 포석정을 포석사(또는 포사)라 이름했고, 국선 문노의 초상을 포석사에 모셨다는 기록과 함께, 보리(12세 풍월주)와 만룡, 문노(국선)와 윤궁, 김춘추와 문희의 길례(결혼)를 이곳에서 치뤘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포석정은 단순한 유흥의 장소가 아니라 충의열사를 모신 사당이며, 귀족 자제들의 혼례의 장소로도 이용된 성소임을 알 수 있다. (계속)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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