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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산 지역의 문화유산 ①
정석준 신라문화전문해설사,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3년 04월 13일(목)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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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경주는 신라 천년(B.C 57~A.D 935)의 고도(古都)였던 관계로 흔히 ‘노천박물관’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유물과 유적이 집중적으로의 분포되어 있는 민족문화의 보고(寶庫)이다. 그 중에는 2011년 9월 현재, 국보 34점, 보물 83점, 사적 77점 등 273점이 국가 및 도지정문화재이며, 43점이 문화재자료이다. 유네스코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하여, 불국사·석굴암(1995년)과 경주역사지구(남산지구, 월성지구, 대릉원지구, 황용사지구, 산성지구/ 2000년), 양동마을(2010년)을 세계역사문화지구로 등재하여 보호하고 있다. 남산은 월성의 남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주산인 468m의 금오봉과 수리봉이라 부르기도 하는 494m의 고위봉을 비롯하여 양산과 도당산을 아울러 남산이라 부르고 있다. 남북의 길이는 약8㎞요 폭은 약 4㎞에 이르는 어지간히 큰 산입이다. 남산을 동서 양편으로 분리하여 동남산과 서남산으로 크게 나누기도 하는데, 양단 모두 40여개의 크고 작은 계곡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골짜기마다 전설이 있고 불교유적이 있다. 남산이야말로 역사와 전설의 보고이며, 민족의 영산(靈山)이다. 서남산 지역은 신라의 역사가 처음 시작된 곳이기도 하며, 천년 사직의 막을 내린 곳이기도 하다. 시조왕의 탄생처인 나정, 최초의 궁궐터인 창림사지, 망국의 한을 담은 포석정지가 여기에 있으며, 오릉을 위시한 많은 왕릉과 고분이 있고 바위마다 불상이 새겨져 있다. 오릉: 오릉은 삼국통일의 영주인 태종 무열왕의 능역과 함께 신라 왕릉 가운데서 가장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는 것 중의 하나로 꼽힌다. 그것은 박혁거세왕이 박씨왕의 시조인 동시에 신라의 국조(國祖)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륜을 자랑하는 노송이 울창하게 솟아있는 한가운데에 5기의 능이 옹기종기 정답게 모여 있다. 오릉의 피장자에 대해서 ‘삼국시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는 차이가 있다. ‘삼국사기’에는 시조왕인 박혁거세왕, 2대 남해왕, 3대 유리왕, 5대 파사왕과 시조왕의 왕비인 알영(閼英), 다섯 분의 능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삼국유사’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說話)를 전하고 있다. “왕은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만에 하늘로 승천하고 7일 후에 유해가 흩어져 땅에 떨어졌는데, 왕후도 또한 세상을 떠나는지라, 나라 사람들이 흩어진 유해와 합해서 장사 지내고자 하니 큰 뱀이 나타나서 방해를 하므로 사람들이 이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여 머리와 4지(팔, 다리)를 제각기 장사지내 다섯 개의 능을 만들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릉을 사능(蛇陵)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내용이 서로 상이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두 기록 모두 공통적으로 박혁거세의 능으로 기록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내부 구조는 알 수 없으나 오릉은 외관상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분(封土墳)이다. 5기의 고분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한 고분이 높이 10m로 가장 큰 규모이며, 합장분으로 추정되는 표주박 형태의 고분은 높이 약 7.2m 규모이다. 숭덕전(崇德殿)은 오릉의 제실인데, 조선 세종 11년(1429)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선조 33년(1600)에 재건하였고, 숙종 때 수리하였으며, 경종 때 사액되었다. 신도비(神道碑)에는 혁거세왕과 숭덕전의 내력이 새겨져 있으며, 영조 35년(1759)에 세운 것이다. 알영정(閼英井)은 알영왕비의 탄생지라 일컬어지고 있는 우물터이다. 알영왕비의 탄생설화 또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다소 차이가 있다. ‘삼국사기’에는 ‘시조왕이 즉위한 5년(BC 53) 정월, 알영정에 계룡이 나타나서 오른쪽 겨드랑이 갈빗대 밑으로 여자아이를 낳았다. 이를 본 한 노파가 이상하게 여겨 거둬 기르며, 우물이름을 따서 알영정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알영은 자랄수록 그 인품과 용모가 뛰어나므로 시조께서 그 말을 듣고 그녀를 왕비로 삼았다. 알영왕비는 마음이 어질고 행실이 착하여 내조의 공이 컸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시조왕과 아울러 두 성인(二聖)이라고 하였다. 시조왕이 돌아가시자 왕비도 또한 세상을 떠났으므로 같은 영역에 장사지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혁거세가 탄생하던 날 사량리 알천가에 계룡이 나타나 왼쪽 갈비에서 계집애를 낳았는데, 모습과 얼굴이 유달리 고왔으나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았다. 월성 북쪽의 내에 가서 목욕을 시키자 부리가 떨어졌다. 이 아이가 알영이며 시조왕후가 되었다.’라고 되어 있다. 경주김씨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설화 또한 닭과 연관되어 있다. 석탈해왕 4년에 왕궁 남쪽에 있는 시림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려 호공이란 신하에게 살펴보게 하였다. 호공이 닭 우는 소리를 쫒아 시림에 가 보니 나무 가지에서 힌 닭이 울고 있고 그 아래 금괘가 놓여 있었다. 금괘를 열어보니 아주 잘 생긴 어린아이가 방긋 웃고 있었다. 그 아이를 왕궁에 데려다 키웠는데, 아이가 금궤에서 나왔다하여, 성을 김이라 하고, 이름을 알지(알지는 어린 아이라는 뜻이라고 함)라고 하였으며, 시림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김알지를 얻었다고 하여 이후 시림을 계림으로 고쳐 불렀다고 하며, 나라 이름을 계림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김알지의 7대 손이 바로 13대 미추왕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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