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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불)평등을 원하는가? ②
이상직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3년 03월 22일(수) 19:00
ⓒ 경북연합일보
교육 제도와 노동 제도가 연결되는 방식은 한 사회에서 계층화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와 관계있다.
미국의 교육사회학자 Alan C. Kerckhoff는 1996년에 둘의 관계에 대해 네 가지 가설을 제시한 바 있다.
첫째, 커리어가 좀 더 촘촘하게 구조화된 사회에서는 학생들이 비교적 일찍 교육과 직업 전망을 구체화할 것이다.
둘째, 커리어가 좀 더 촘촘하게 구조화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학생들이 자기 처지를 쉽게 수용할 것이다.
셋째, 커리어가 좀 더 긴밀하게 구조화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세대 간 이동이 덜 활발할 것이다. 커리어가 일찍 결정될수록 가족 배경의 영향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넷째, 커리어가 긴밀하게 구조화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내부노동시장의 영향력이 약할 것이다. 기업 간 이동이 더 활발할 것이다.
위 가설을 한국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말해 볼 수 있다.
첫째, 한국 사회에서는 학생들이 비교적 늦게 교육과 직업 전망을 구체화·현실화할 것이다.
둘째, 한국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학생들이 그 처지를 쉽게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한국 사회에서는 세대 간 이동이 활발할 것이다.
넷째, 한국 사회에서는 내부노동시장이 뚜렷한 역할을 할 것이다. 기업 간 이동은 활발하지 않을 것이다.
생애 경로가 일찌감치 갈리는 사회는 공식적으로 층화되어 있는 사회다. 각 경로는 나름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각 경로의 사회경제적 격차가 아주 크지 않다면 그 사회는 안정적으로 층화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모두가 같은 꿈을 꾸는 것은 아니고 같은 꿈을 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회는 층화되어 있다.
그러나 각자의 꿈이 나름의 방식으로 구현되고, 나름의 경력으로 인정된다. 이 체제에서 시험은 어떤 직업적 역할에 적합한 능력을 갖춘 사람을 선출하는 ‘자격시험’의 성격이 강하다.
생애 경로가 나중에야 갈리는 사회는 비공식적으로 층화되 있는 사회다. 모두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졸업자 다수가 대학에 진학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기회가 열려 있
다. 의지와 능력만 있다면 같은 꿈을 꿀 수 있다. 이것이 역동성을 낳는 맥락이다. 그러나 사실상 그 내에서는 보이지 않는 위계가 작동한다. 학군, 학교, 성적 등으로 짜인 위계 구조가 촘촘하게 작동하고, 이것이 역설적으로 더욱 일관된, 다수가 포함되는 위계 구조를 만들어낸다. 단일한 위계 구조에 놓여 있기 때문에 비교에 따른 압박감을 훨씬 크게 느낀다. 실패감 또한 훨씬 크게 느낀다. 이 단일 위계 구조를 조율하는 것은 다양한 형태의 ‘선발 시험’이다. 선발 시험의 목적은 준비된 지위와 역할 수행에 합당한 일정 수의 사람을 선출하는 것이다.
독일의 교육사회학자 Jutta Allmendinger는 미국과 독일의 차이를 1989년에 이렇게 정리한 바 있다. “미국에서 선택의 범위는 모든 학생에게 열려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선택의 범위는 차등적인 교육의 질로 인해 제약된다.
반면, 독일은 교육연수가 계층화되어 선택의 범위가 제한된다. 그러나 동일 수준에서는 훈련의 질이 같다. 따라서 그 과정과 연계된 미래의 가능성은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
독일과 같은 사회에서는 계층 구조가 눈에 보이지만, 안정적이다. 나름의 위치만 지키면 무난하게 살 수 있다.
미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계층 구조가 눈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위계는 더욱 강력하게 일상을 규정한다. 매우 불안정하고 경쟁이 치열하다. 실패자에게는 가혹하다. 이런 의미에서 어느 한쪽이 더 불평등한 사회이고 그렇지 않은 사회라고 말하기 어렵다. 불평등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은 후자 사회의 역동성을, 후자 사회의 빛과 그림자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대중 교육 체제가 엘리트 교육과 분리되어 형성된 유럽 주요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초등교육 체제가 먼저 형성된 후 순차적으로 학교급을 높여가면서 교육이 팽창되었다.
중등교육 팽창에 이은 고등교육 팽창은 형식적으로는 기회의 평등화를 가져왔다. 뜨거운 교육열과 이에 상응하는 기회의 확대로 한국의 교육-노동시장 시스템은 일정 기간까지는 계층화를 완화하는 역할을 했다. 그 속도와 수준은 세계에서 독보적이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기회가 형식적으로나마 보편화되면 계층화를 비공식적으로 심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형식적으로 기회를 확대할 여지가 없는 가운데 일원화된 경쟁의 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나면서 기회 확대 이전보다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결과의 격차도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들어 청년들의 학교-노동시장 이행 시점이 여러 국가들 가운데 유례없는 수준으로 지연되는 현상은 형식적 평등화와 실질적 계층화가 맞물린 결과로 볼 수 있다.
교육-노동시장 연계의 측면에서, 계층화 방식의 측면에서 특정 국가가 모델 사례로 언급되고는 한다. 그러나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어떤 의미에서는 아무 나라도 가 보지 않은 길일지 모른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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