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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와 한국과의 관계
김진규 본지 상무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3년 02월 14일(화) 19:09
ⓒ 경북연합일보
2022년부터 국호를 터키에서 튀르크인의 땅을 의미하는 튀르크예로 변경되었다. 그렇다면 왜 터키와 대한민국은 형제국가인가?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터키’ 하면 형제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렇게 불리는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대부분의 사람은 터키가 6·25 때 미국, 영국에 이어 1만 4936명이라는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하여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721명 전사에 2,147명이 부상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병력을 파견하고 또 전사했을까?라는 질문을 하면 그들은 대답하지 못한다.
그건 궁극적인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투르크’라고 부른다.
세계가 대한민국을 ‘코리아(고구려 또는 고려)’라고 하는 것이다.
역사를 배웠다면 고구려 와동시대에 존재했던 ‘돌궐(厥)’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을 것이다.
220년에 수립된 ‘테오 야브구’(Teoman Yabgu·흉노·匈奴) 왕국은 몽골과 함께 중국에서 흉노(匈奴)라 불리던 민족의 하나로, 6세기 중엽부터 8세기 중엽까지 몽골 고원을 중심으로 활약했다.
‘투르크’는 돌궐의 다른 발음이며, 우리 한민족과 같은 우랄 알타이족으로 고구려 전성기엔 여진(숙신)과 마찬가지로 상당수의 돌궐인이 고구려의 기층(基層) 민중에 속했다.
또한, 고구려와 돌궐은 동맹을 맺어 가깝게 지냈는데, 고구려가 멸망한 후(668년) 돌궐은 고구려의 유민을 많이 받아들이면서 우리 민족과 특별히 긴밀해졌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대부분의 서민은 초기엔 당(唐), 후엔 신라의 지배를 받으며 한반도에서 살아갔다. 또 귀족계급 등 중상류층 가운데 일부는 당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나머지 고구려 유민은 몽골, 돌궐 등 타민족에 섞여 살다가, 682년에 동돌궐이 울란바토르(현 몽고의 수도)에 돌궐 2 제국을 수립할 때 바로 여기에 참여했다. 참여한 유민의 숫자가 전체 돌궐 제2제국 인구의 절반인 20만 명이 넘었다니 돌궐 제2제국은 고구려의 후예라 하여도 될 판이다.
돌궐과 고구려는 계속 우호적이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 불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금의 터키에 자리 잡은 그들은 고구려의 후예인 한국인들을 여전히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처럼 터키가 한때는 고구려 기층민중이었고, 고구려 멸망 후에는 우리가 돌궐 제2 제국의 기층민중이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형제의 관계였던 거다.
6·25 때 북한이 남침하자, 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군대 (1만 4936명, 전사 721명, 부상 2147명)를 파견해 우리를 도왔다 파병이 늦어지자, 터키의 고등학생들이 왜 형제의 나라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느냐면서 데모를 벌였다.
6·25 참전과 올림픽 등에서 나타난 그들의 한국사랑을 알게 된 한국인들은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터키의 홈구장과 홈 팬들이 되어 열정적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하이라이트는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 자국에서조차 본 적이 없는 대형 터키국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터키인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한다.
경기는 한국 선수들과 터키 선수들의 살가운 어깨동무로 끝이 났고 터키인들은 승리보다도 한국인들의 터키사랑에 더욱 감동했으며, 그렇게 한국과 터키의‘ 형제애’는 더욱 굳건해졌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나라, 2002년 월드컵 터키전이 있던 날 한국인에게는 식사비와 호텔비를 안 받던 나라, 월드컵 때 우리가 흔든 터키 국기(國旗)가 터키에 폭발적인 한국 바람을 일으켜 그 후 터키 수출이 2003년 59%, 2004년 71%나 늘어났다는 KOTRA 통계가 있다.
이제 그 형제나라가 고난을 당하고 있다. 당연히 도와주고 같이 아파해야 한다.
6·25 때에 800여 명이 생명을 바쳐 우리나라가 존재할 수 있었듯이 우리도 최고의 선행으로 도움을 줘야 된다. 그들은 피가 섞인 우리들의 형제니까.
지진으로 생명을 잃은 수많은 튀르키예인들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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