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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에 대한 귀의(歸依)
정석준 수필가, 조계종 법사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3년 02월 09일(목)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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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은, 입신(入信)하는 의식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외웠다고 전해 온다. “법(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나이다. 즉, 이 법은 현실적으로 과보(果報)가 있는 성질의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며, 열반에 잘 인도하는 성질의 것이며, 또 지혜 있는 자가 자기 스스로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입니다.”(상응부경전55-1) 이 사람들이 부처님에게 귀의(歸依)한 것은 어떤 권위에 위압당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를 따르라.”해서 따른 것도 아니요, 불합리한 까닭에 믿은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의심할 수 없는 사실임을 통감한 나머지 이런 말로 귀의를 표명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말에서처럼 불교의 특징이 잘 나타난 글도 없는 듯하다. 첫째로 그들이 든 ‘현실적으로 증험되는 것’이란 말은 현실에 비추어 보아 사실임이 증명되고 체험된다는 뜻이다. 가령 부처님이 “인생은 고(苦)다.”할 때, 누구라도 허심탄회하게 인생을 응시한다면, 그런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 가르침이 신이나 내세에 관한 것이었다면 현실적으로 증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에게는 아무것도 신비가 없었다. 우리의 현실을 파헤쳐 보이고 자기의 체험에서 얻은 대로 거기에서 해탈할 길을 제시한 것이었다. 두 번째인, ‘때를 격하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란 표현은 한역에서는 ‘즉시적’이니‘현생적(現生的)’이니 하는 말로 대치되었다. 그것은 과보, 즉 성과가 나타나는 시기에 관한 문제다. 앞에서도 예로 든 바와 같이 부처님이 신이나 내세에 관해 가르친 것이라면, 그 성과는 죽고 나서야 판명될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 현실에서 어떻게 자기 자신을 향상시켜 가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가르쳤다. 따라서 그 성과는 자기 노력만큼 언제나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지적된 것은 ‘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 되어 있다. 이 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진리라는 듯이다. 그 신자가 아니면 믿을 수 없는 폐쇄된 가르침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으니 각자가 와서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사실이거든 믿으라는 취지다. 네 번째로는 ‘열반에 잘 인도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열반은 니르바나(nirvana)의 음사(音寫)인 바, 마음속의 격정의 불꽃이 꺼진 상태를 의미한다. 이 말에 의해 부처님은 마음속에 어지러움이 없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경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보여 진다. 우리는 이 열반을 무엇에도 구애됨이 없는 절대적 자유의 경지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여기에 이르는 확실한 길이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지적된 것은 ‘지혜 있는 사람이 각기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각의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맑은 지혜와 바른 방법으로 수도해 간다면, 부처님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는 없다는 뜻도 된다. 부처님은 꼭 자기의 제자가 되어야 구원을 받는다든가, 자기 이름을 부르고 기도해야 내세가 보장된다고는 아니했다. 또 다른 종교를 믿건, 안 믿건 배격하지도 않았다. 다만 지혜 있는 사람이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후세의 대승불교에 오면 여러 가지 경전에 부처님에게 의탁되어 제작됐으며, 그 중에는 내세를 약속하는 것도 없는바 아니나, 그것이 부처님과는 관계없는 일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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