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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가 들려주는 신라사의 진실 ⑧
정석준
신라문화해설사.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2년 11월 10일(목) 17:32
ⓒ 경북연합일보
천명공주는 어머니 마야왕후에게 “남자 중에는 용숙(龍叔)같은 사람이 없습니다.”하고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용수와 용춘 중에서 ‘젊은 아재(叔)’란 뜻으로 용숙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야왕후가 잘못 알아듣고 진평왕에게 “천명이 용수를 좋아하고 있다.”고 알렸던 것이다. 왕후로부터 천명의 말을 전해들은 진평왕은 ‘양수겸장(兩手兼將)의 묘수’라고 생각했다.
『화랑세기』는 이를 ‘그때 대왕은 적자(嫡子)가 없어 공(용춘)의 형, 용수 전군을 사위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다’라고 쓰고 있다. 진평왕은 용수를 사위로 삼고 왕위까지 물려주려고 용수를 천명공주의 남편으로 만들어 버렸다. 왕후가 천명공주의 말을 잘 못 알아듣는 바람에 천명공주는 그만 사랑하는 용춘이 아닌, 형 용수의 아내가 되고 만 것이다. 용수의 아내가 되어서도 용춘에 대한 천명공주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화랑세기』는 ‘공주는 제(帝, 진평왕)에게 공의 자리를 떠받쳐주게 하였고, 여러 차례 공의 관계(官階)를 승진시켜 위(位)가 용수공과 같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천명공주가 공주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용춘의 지위를 높여주었음을 뜻한다.
한편 13세 풍월주가 된 용춘은 많은 업적을 쌓고 있었다. 그가 낭도를 이끄는 방법은 신분이 아니라 실력과 공(攻)을 위주로 삼는 것이었다. 용춘이 풍월주로서 큰 업적을 이룩하자 진평왕은 용춘에게 다음 왕위를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천명에게 왕위계승권을 양보하라고 권했다. 『화랑세기』는 ‘이때 천명공주가 효심으로 순종하여 지위를 양보하고 출궁했다’고 적고 있다. 영국의 윈저(Windsor, 1894~1972)공이 심슨(Simpson) 부인과의 사랑을 위해 왕위마저 버렸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천명공주 역시 사랑하는 용춘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린 것이다.
천명공주가 출궁함으로써 왕위는 자연히 용춘에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선덕공주가 여기에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남자만이 왕위를 이어야 한다는 기존 관념에 도전했던 것이다. 언니가 즉위한다면 모르겠지만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용춘에게 자리를 양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선덕공주는 왕위를 양보하기는커녕 용춘이 자신의 사신(使臣)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평왕은 선덕이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했지만, 이 정도의 배포라면 왕 노릇을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진평왕은 선덕의 요청을 받아들여 용춘에게 선덕을 받들라고 명령했다. 이는 용춘이 선덕의 사신이자 남편이 되는 것을 뜻했다. 용춘은 선덕의 남편자리를 사양했으나 임금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화랑세기』는 ‘여왕은 3명의 남편을 둘 수 있게 하는 삼서지제(三壻之制)를 제도화하여 용춘 외에도 흠반(欽飯)과 을제(乙祭)를 남편으로 삼았다’고 적고 있다. 천명은 남성이 즉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하여 왕위와 용춘을 모두 놓쳤으나, 선덕은 이런 고정관념에 도전한 결과 왕위와 용춘을 전부 차자하고, 두 남자까지 더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랑에 관한한 최후의 승리자는 천명공주였다. 『화랑세기』는 ‘공(용춘)이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선덕에게서)스스로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용춘이 선덕에게 애정이 없었음을 말해준다. 천명공주는 용수가 죽으면서 자신과 아들을 용춘에게 맡김에 따라 원하던 사랑을 얻을 수 있었다. 용춘은 아들을 두지 못하였으므로 천명공주와 용수 사이에 난 춘추를 아들로 삼았는데, 훗날 김춘추가 즉위하자 용춘을 갈문왕(葛文王)으로 추존하였다. 선덕여왕이 3명의 남편에게서 자신의 뒤를 이을 자식을 낳지 못한 데 반해 천명공주는 비록 자신이 왕이 되지는 못했으나 삼국통일의 주역을 생산하였으니, 천명공주의 인생이 결코 실패한 인생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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