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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가 들려주는 신라사의 진실⑦
정석준
신라문화해설사.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2년 11월 03일(목) 18:31
ⓒ 경북연합일보
그렇다면 성골이라는 것은 혈연만이 절대적인 요소가 될 수 없고, 지배력을 형성하는 세력 중에서도 왕권을 계승할 수 있는 특정한 집단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화랑세기』는 성골의 신분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화랑세기』 <12세 보리공조>에는 ‘보리공의 어머니인 숙명공주가 황후의 지위로 이화공(1세 풍월주)의 아름다움에 빠져 골품(骨品)을 초개같이 버리고 동혈(同穴)의 벗의 벗이 되기로 약속해 손을 잡고 출궁해 종신토록 배반하지 않았다’고 나와 있다. 그런가 하면 <13세 용춘공조>에는 ‘진평왕의 장녀인 천명공주가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지위를 양보하고 출궁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숙명공주와 천명공주의 출궁은 골품 신분 유지와 관련해 중요한 의미가 있다. 숙명이나 천명이 궁에 있을 때는 분명히 성골 신분을 가졌고, 천명은 왕위를 계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출궁해 골품을 버린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그들이 버린 골품은 성골이었다. 그들은 궁 밖에서 살면서 진골 신분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로써 화랑세기 시대의 왕궁은 성골집단의 거주지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물론 왕궁에는 신분이 낮은 사람도 살았으나, 기본적으로 왕궁은 왕과 그 형제들의 가족들이 거주하는 성골집단의 거주지였다는 밝혀진 것이다.

9. 선덕여왕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언니 천명공주가 사랑하는 사람[용춘]을 위하여 왕위를 양보하였기 때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덕만공주(선덕여왕의 이름)와 언니인 천명공주가 쌍둥이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순전히 작가가 꾸며낸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신라는 철저한 골품제 신분사회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선덕왕조>에는 덕만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선덕왕이 왕위에 오르니 이름은 덕만이요, 진평왕의 맏딸인데, 어머니는 마야부인(摩耶夫人) 김씨이다. 덕만은 성질이 너그럽고 어질었으며 명민하였다. 진평왕이 세상을 떠났는데 아들이 없으므로 나라사람들이 덕만을 왕위에 올려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라는 호를 올렸다.」
이와 같이 『삼국사기』에는 덕만공주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진평왕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삼국유사』 <왕력편>은 선덕여왕의 즉위를 “성골의 남자가 없어졌기 때문에 여왕이 즉위하였다.”고 좀 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선덕여왕은 핏줄을 잘 타고나서 왕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덕만은 진평왕의 맏딸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덕만 이외에 다른 딸도 있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삼국유사』에는 덕만의 이름과 함께(奇異1, 선덕여왕 지기삼사 편), 「서동요」에 등장하는 선화가 셋째 딸이라고 적고 있고(奇異2, 선화공주와 무왕 편), 『화랑세기』는 천명이 맏딸이고, 덕만은 둘째 딸이라고 하였다. 김춘추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삼국사기』에는 진지왕의 아들인 용춘(일설에는 용수라 한다)이라고 쓰여 있고, 『삼국유사』에는 용수(혹은 용춘이라고 한다)라고 하여, 용춘과 용수를 동일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화랑세기』는 용수와 용춘이 분명히 다른 인물이며, 두 사람은 형제지간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덕만공주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언니 천명공주(天明公主)가 사랑 때문에 왕위를 포기하였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편>에 의하면, 진지왕은 폐위되었으나 태상태후(진흥왕의 왕비)의 명령으로 진지왕의 두 아들-용수와 용춘-은 진평왕의 딸인 천명ㆍ덕만과 함께 궁궐에서 자랐다. 이들은 서로가 이복형제인 줄 알고 있다가 나중에 자신들이 숙부와 조카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천명공주는 용춘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신라 사회에 숙부와 조카 사이는 서로 사랑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내성적인 성격의 천명공주에게 싹튼 사랑의 대상은 용춘이었으나, 그는 공주의 그런 마음을 몰라주었다.(계속)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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