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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가 들려주는 신라사의 진실 ④
정석준
신라문화해설사.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2년 10월 13일(목)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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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이와 같이 『화랑세기』는 진지왕을 보위에 앉힌 인물도 미실과 그 추종 세력이고, 진지왕을 권좌에서 몰아 낸 인물도 미실과 그 추종세력 임을 밝히고 있다. 왕을 세우기도 하고 폐위시키기도 한 미실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미실에 대하여서 한마디의 언급도 없다. 그러나 『화랑세기』는 미실이란 인물에 대해서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미실의 아버지는 미진부(2세 풍월주)고 어머니는 묘도(미실의 외조모)였다.『화랑세기』에 ‘미실은 용모가 절묘하여 풍만함은 옥진(소지왕의 후궁)을 닮았고, 명랑함은 벽화(진흥왕의 모)를 닮았고, 아름다움은 묘도를 닮아서 백 가지 꽃의 영검함이 뭉쳐 있고, 세 가지의 아름다움의 정기를 모았다고 할 수 있다’고 극찬 할 정도로 완벽한 미모와 몸매를 가진 여인이었다. 이런 미실에게 옥진은 전문적인 방사(房事)기술을 가르쳤다. 미실의 첫 남편은 세종이었다. 세종은 진흥왕(眞興王, 재위 540 ~576)의 이부동부(異父同腹, 부는 다르고 모는 같음) 동생으로, 어머니는 지소태후였다. 지소태후는 공경(公卿)의 미녀들을 궁중에 모아놓고 세종에게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고르게 했다. 이때 세종이 선택한 여자는 미실이었음이 물론이었다. 궁중에 들어간 미실은 옥진에게 배운 전문적 방사 기교로 세종을 사로잡았다. 이런 상황을 『화랑세기』 <11세 하종조>는 ‘전군(세종)은 깊이 빠져들어 기동을 못하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무렵 지소태후가 사도왕후를 폐하려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신라에는 왕실에 왕비 등의 여자를 공급하는 혈통이 두 그룹이 있었는데, 하나는 진골신통(眞骨神統) 계요, 다른 하나는 대원신통(大元神統) 계였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이 두 혈통은 부계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에게서 딸로, 딸에서 손녀로 이어지는 모계 세습의 특징이 있었다. 두 혈통은 국왕의 총애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경쟁관계에 있었음은 물론이다. 지소태후는 같은 진골신통계인 숙명공주에게 왕후자리를 주려고, 대원신통계인 미실의 숙모 사도왕후를 폐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진흥왕은 사도왕후를 사랑했기 때문에 지소태후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지소태후의 분노가 사도왕후의 조카인 미실에게 미쳐, 미실은 궁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궁에서 쫓겨나온 미실은 사다함을 만났다. 세종이 미실이 상대한 첫 남자라면 사다함은 그가 만난 첫 사랑이었다. 두 사람은 부부가 되기로 굳게 약속하였지만 대가야가 모반을 하여 사다함은 전선으로 나가게 되었고, 미실을 그리워한 세종이 상사병에 걸려 지소태후의 명령으로 다시 입궁하게 되었다. 이후 미실은 자신의 뇌쇄적 매력을 이용하여 권력 장악의 길로 나선다. 맨 먼저 동륜태자와 관계를 맺고, 이를 알지 못하는 진흥왕과도 관계를 맺었다. 그에게 부자와 동시에 관계하는 것은 임금과 태자를 동시에 포섭하는 것을 뜻했다. 『화랑세기』는 ‘미실은 음사(陰事)를 잘했기 때문에 진흥왕의 총애가 날로 증하여서 황후궁 전주(殿主)에 발탁되었는데, 그 지위가 황후와 같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미실은 진지왕을 폐하고 진평왕을 왕위에 세운 뒤 관계를 가졌으며, 이외에도 설원ㆍ미생 등과도 관계를 맺고, 자기와 관계한 사람들(세종ㆍ설원ㆍ미생)을 자신의 충복으로 만들었다. 미실은 진흥왕 말년부터 진평왕 중엽까지, 30여 년 간 왕권을 능가할 할 정도로 권력을 행사한 인물이었음을 『화랑세기』는 전하고 있다.
5. 김춘추가 임신한 문희를 외면한 이유는 정궁부인(正宮夫人)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조>에는 김춘추와 문희가 결혼하게 된 아야기가 나온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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