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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가 들려주는 신라사의 진실 ①
정석준 신라문화해설사,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2년 09월 22일(목)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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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Ⅰ. 들어가는 말 『화랑세기』는 『삼국사기』에 신라시대 김대문(金大問)이 지었다는 기록만 있을 뿐 멸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박창화(朴昌和, 1889~1962)가 원본을 발췌하여 붓으로 옮겨 적은 발췌본이 1989년에, 원본 자체를 붓으로 옮겨 적은 필사본이 1995년에 세상에 알려졌다. 필사본 『화랑세기』는 발견되자마자 곧 위작 논쟁에 휘말렸다. 그것은 역사적 통념을 완전히 바꾸는 내용의 파격 때문이었다. 『화랑세기』 필사본이 만약 『삼국사기』에서 언급한 김대문의 『화랑세기』라면, 현전(現傳)하는 가장 오래된 사서(史書)인 『삼국사기』보다 무려 460년이나 앞서는 기록이다. 더욱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고려인이 쓴 삼국시대 이야기라면 『화랑세기』는 신라인이 쓴 신라 이야기인 만큼, 한국 고대사학계가 흥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필사본의 발견 초기에는 위서(僞書)라는 주장이 지배적이었으나, 시간이 지나고 필사본 『화랑세기』의 연구가 확산되면서 진짜임을 뒷받침해 주는 주장들이 속속 나오고, 또 진본임을 전제로 신라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책들이 출간됨에 따라, 지금은 진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는 추세에 있다고 하겠다. 『화랑세기』는 주로 32명의 풍월주(風月主, 화랑의 우두머리)의 세보를 밝히면서 신라시대 진골정통(眞骨正統)과 대원신통(大元神統)의 계보, 가야의 왕실 계보 등까지 왕을 중심으로 운용되던 신라시대 골품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하급자가 임신한 아내를 상급자에게 보내는 마복자(摩腹子, 배를 맞춘 아들) 등) 제도는 인류역사상 초유의 제도라 해서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이 글에서는 필사본 『화랑세기』의 진위 문제는 논외(論外)로 하기로 하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과 『화랑세기』 기록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내용들이 『화랑세기』에서 밝혀지고 있는 것을 찾아내어 기존의 『삼국사기』나 『삼국사기』를 통해서만 보아왔던 신라 사회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Ⅱ. 화랑세기를 통해 알 수 있는 새로운 사실 1. 화랑도는 선도(仙道)이다. 화랑도의 성격에 대하여 『삼국사기』 <진흥왕조>에는 최치원의 난랑비(鸞郞碑) 서문을 인용하여 유불선(儒敎佛仙) 삼교를 포괄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고 하였다. 이 교를 창설한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밝혀져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유불선(儒彿仙)의 세 가지 교를 포괄하여 중생을 교화하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집에서는 효도하고, 집밖에 나아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공자의 뜻이요, 무위(無爲)의 일에 처하며, 불언(不言)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은 노자의 뜻이요, 모든 악행을 하지 않고 모든 선행을 실천하는 것은 석가의 교화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화랑세기』는 화랑도가 선도에서 출발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화랑은 선도이다. 우리나라(新羅)에서 신궁(神宮)을 받들고 하늘에 대제(大祭)를 행하는 것은 마치 연(燕)의 동산(桐山), 노(魯)의 태산(泰山)과 같다. 옛날 연부인(燕夫人)이 선도(仙徒)를 좋아하여 미인을 많이 모아 이름하기를 국화(國花)라 하였다. 그 풍습이 동쪽으로 흘러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여자로써 원화를 삼게 되었는데…옛날에 선도는 단지 신(神) 받드는 일을 주로 하였는데, 국공(國公)들이 화랑도에 들어간 후로 선도는 도의(道義)를 서로 힘썼다. 이에 어진 재상과 충성스러운 신하가 이로부터 빼어났고 훌륭한 장군과 용감한 병졸이 이로부터 나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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