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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서 전문가 역할을 고민한다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2년 08월 31일(수) 19:25
ⓒ 경북연합일보
민주화 이후 공적 영역에 전문지식의 수요가 늘어나며 전문가 역할도 확대됐다.
법률가, 학자, 시민운동가나 언론인, 고학력 운동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 내 최대 집단이 되었고, 선거캠프에 결합한 연구자 규모도 상당하다.
정당의 공천심사나 비대위·혁신위에 참여하는 구성원도 지식인이 대부분이다.
파당적 권력 경쟁이나 정당정치 영역만이 아니다.
정부위원회나 자문기구도 급증했다. 2020년 기준 중앙부처 위원회는 585개이고, 17개 광역자치단체로 범위를 넓히면 2954개에 이른다.
그러나 과거 권력에서 소외된 노동자를 비롯해 농민·자영업자 등 결사체의 조직적 참여가 괄목할 만하게 늘었다고 보기 어렵다.
2021년 국정감사에서 이은주 의원실(정의당)은 지자체 자문기구 위원의 절대 다수가 50대, 남성, 교수, 기업가라 지적한 바 있다.
반면 노동조합 출신이 자치하는 비율은 1% 미만, 사용자단체는 2% 미만, 여타 이해관계자 집단은 아예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국가 정책과정에 사회 집단 이해를 대표하는 조직보다 ‘교육받은 중산층 전문가’의 참여가 늘어났다.
한국이나 대만 같은 ‘신생 민주주의 국가’의 특징이기도 하다. 오늘날 전문가의 참여·지식의 유입은 상당한데 기대한 변화는 쉽지 않을까.
첫째, 정책은 전문가가 진공상태에서 ‘정답’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회 다양한 이익이 대표되고 조정될 때 실현된다.
현대 민주주의는 소수 엘리트의 선의에 기반한 ‘전문적 결정’보다 다원적 시민집단이 합의한 ‘현실적 최선’이 낫다고 믿는 정치체제다.
평범하면서도 각자 욕망을 가진 불완전한 인간들이 싸우고 적대할 수밖에 없는 ‘갈등의 불가피성’을 긍정해서다.
노동자도 기업가도 각자 사익(私益)추구가 존중된다. 집단 간 차이 속 조정으로 ‘공익’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지 처음부터 ‘일반 의지’란 없다.
선진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은 정책 주체다. 시민이 정당한 권력을 위임해서이고, 연구기관보다 수용성 높은 정책을 만드는 ‘조직’이어서다.
아무리 훌륭한 이론이나 탁월한 전문가도 전(全)분야 구체적 현실을 파악할 수 없다.
현장연구를 중시하는 학자도 다종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 조사에 한계가 있다.
반면 정당은 전국적 조직체계를 통해 사회 전반 이해집단을 조사해 상충된 이익을 조정해 정책을 생산할 수 있다.
정당에는 선출직뿐 아니라 지역위원회나 노동자·여성·중소상공인을 대표하는 직능위원회가 존재한다. 정당이 체계적으로 작동할수록 지역과 직능조직은 온갖 민원을 집합해 구성원에게 수용성 높은 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
한국 정당에도 직능위원회나 지역위원회가 있다.
단순 선거 동원에만 머무를 뿐 시민 요구를 투입해 정책으로 만드는 기능은 취약하다.
선거 때 쏟아지는 공약은 수많은 전문가가 단기간에 만든 백화점식 책자에 가깝다.
캠프는 잠시 장이 서듯 수많은 인사가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확인조차 어렵다.
공약 간 정합성도 연속성도 떨어지니 진짜 정책으로 발전하기에 한계가 있다.
둘째, 정책은 일련의 정치과정을 통과해야 현실화할 수 있고 훈련된 사람이 잘해낼 수 있다.
전문지식인의 정치 유입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정치 밖 전문가가 바로 역할을 해내기란 쉽지 않다.
수없이 찾아오는 민원인과 이익집단 사이에서 어떤 요구를 우선 해결하고 조정할지 판단하려면 특정 분야의 전문성만으로 부족하다.
정당 내 의사결정 구조를 이해해야 자신의 의견을 당론으로 만들 수 있다.
상임위원회에서 다른 견해를 가진 구성원을 설득하며 실력을 발휘해야 법률이 되고 예산을 사용할 수 있다.
즉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사람, 선출직 자체도 또 하나의 정치전문직이다. 거대한 관료조직을 이끌어 청와대, 정당 및 국회 등 타 기관과 협력할 수 있는 정치적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다. 그런데 캠프에서 발언권이 있었단 이유만으로 장관·주요 위원회 수장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정당민주주의가 발달한 유럽은 물론 전문가가 정치에 폭넓게 관여하는 미국조차 정치 경력 없이 대학에서 총리나 장·차관급으로 임명되는 경우는 드물다.
소위 대가라 불리는 학자도 정치인의 보좌나 자문을 맡는 이유는 학술전문가와 정치전문가의 역할이 구분되어서다.
셋째, 정당 스스로 정책을 생산할 수 없으면 관료제가 강해지고. 지식인은 관료기술적 결정을 뒷받침하는 수동적 역할에 머무르기 쉽다. 행정조직의 저항에서 개혁실패의 원인을 찾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공약집을 만든 경험밖에 없는 전문가가 구체적 실무와 지식을 갖춘 거대 관료 조직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정부위원회나 자문기구는 종종 정당의 취약한 정책기능을 메우고자 활용되었다.
자문위가 새 의제를 제출하거나 여러 대안을 심의하는 경우는 드물다.
상당수 위원회는 집권세력의 ‘공약’방향을 정당화하는 활동에 그친다. 행정부 권력이 교체될 때마다 주요 위원회의 장과 위원이 재구성된다.
그 사실 자체로 위원회 목적이 전문가의 지식과 지혜를 빌리는 데에 있지 않다는 의미 아닐까.
출발부터 ‘답정너’ 위원회이니 설령 나쁜 정책이 추진돼도 전문가는 이를 저지하거나 바로잡는 데 기여할 여지가 적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문가의 능력이 관료 결정을 정당화하는 도구에 불과하단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교수 출신 장관이 가장 무능하단 평가도 적지 않다.
오히려 과도한 전문가 참여가 자기 권위를 떨어뜨리지 않는지 고민해 볼 일이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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