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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와 교과서 개정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2년 08월 28일(일)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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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새 학기를 앞두고 모두들 분주하다. 코로나 이후 처음 맞는 전면 대면 학기다. 학기 시작 전과 학기 초의 대학에는 학생들이 돌아오고 서점은 새 교재들을 내놓고, 문구를 새로 구입하고, 한 학기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는 공기가 느껴진다. 가을도 시작된다. 새 학기에 무슨 강의를 할 것인지는 사실 미리미리 정해진다. 특히 신규 교과목 개설에는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리는 절차가 있다. 역사가 오래된 중요 과목들은 항상 있지만 학교 안팎의 새로운 수요에 맞춰 개설되어야 하는 첨단 교과목들도 있다. 물론 매년 하는 강의라도 다듬고 업데이트하는 작업은 필수다. 강의 교재인 교과서도 같다. 항상 새로운 방향과 내용을 의식하고 그에 맞추어서 내놓아야 수업교재로서의 가치를 잃지 않는다. 특히 법학 분야는 개정이 유달리 중요하다. 새로운 법령과 판례,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석을 잘 갖추지 못하면 수업교재로 부족하다. 정기적으로, 수시로 책을 개정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수업교재는 아니지만 법령의 주석서가 정기적 개정이 필요한 좋은 예다. 나치 시대인 1938년에 시작되어서 이제 제80판이 나와 있는 독일 민법주석서 ‘팔란트’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오래 가는 이유는 저자가 건강해서 에너지를 잃지 않았고 은퇴 후에는 승계도 이루어져서다. 필자의 독일 친구 부르크하르트 헤스 교수가 쓴 민사소송법 교과서는 제30판인데 승계한 것이다. 승계는 사제간에 많이 이루어지지만 내 책을 가장 잘 계승해 줄 후배 학자를 널리 찾기도 한다. 회사법학의 세계적 거목 독일 부체리우스 로스쿨 카르스텐 슈미트 교수는 올해 83세다. 작년 기준 연구실적 목록에 저서 46권, 논문 485편 포함 모두 1210건이 나온다. 1972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니 그 후 50년간 매년 평균 24편의 연구실적을 낸 셈이다. 내년 초에 슈미트 교수의 회사법 교과서 제5판이 출간 예고되었다. 제1판(1459면)이 1986년에 나왔으니 37년이다. 5판은 2000면이 넘는다고 한다. 사전 주문을 완료했다. 흔히 개정판을 만드는 작업은 초판에 비해 힘이 덜 들어가는 것으로 여긴다. 반만 맞다. 시간이 경과한 후에 경우에 따라서는 큰 틀이 바뀌어 있기도 하고 학계의 새로운 연구에 따라 관점 전체가 변화한 경우도 있다. 예컨대 1980년대에 기업지배구조 개념이 도입된 것과 얼마 전에 ESG 관점이 새로 도입된 것과 같다. 그런데 내 앞에 놓여있는 내가 쓴 이 작품은 옛날 그대로다. 타임머신을 타고 본 옛 모습이다. 다시 고치는 것이 쉽지 않다. 또, 독자는 옛 판을 아는 독자가 아니고 새 독자가 대다수다. 저자에게나 개정판이지 독자 대다수에게는 초판이다. 책 앞에 지난 판과 어떤 것들이 다른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저자들이 많지만 독자들에게는 별로 필요치 않다. 어떤 내용을 이제 버려야 할 것인지의 결정도 쉽지 않다. 역사적 시각은 언제나 도움이 되지만 특정 내용이 그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그냥 내가 붙들고 있고 싶은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37년 동안 이 작업을 지속해 온 것은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보통 일은 아니다. 초판을 공부했던 대학생이 이제 정년을 앞둔 교수가 되어있다. 오래 전에 경제학과의 한 교수님이 은퇴하시면서 그 동안 학생들이 내가 가르치고 싶은 것을 배워주어서 가장 고맙고 그게 가장 미안하다고 하셨다. 책도 같다. 저자가 쓰고 싶은 것을 쓴 책과 독자에게 필요한 것을 쓴 책이 있다. 사람의 일생에도 개정판 작업이 있다. 정치인은 선거, 직장인은 승진이나 해외근무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과 무관하게 사람 자체에도 주기적으로 개정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강의나 책과 다르게 판이 올라갈수록 남이 필요한 것들이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것들로만 채워도 좋겠다. 그래도 그 때문에 주위에 고맙거나 미안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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