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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과 불교의 영향
정석준 법사,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2년 08월 04일(목)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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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송대(宋代)에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지고 민족의 주체성에 눈을 뜨면서 소위 정통성에 입각한 전통사상의 재정립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종래의 선진유학(先秦儒學)에 대하여 신유학의 기운이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불교가 이교(異敎)이고 또한 노장이 비정통이었기 때문에 이것으로 유학을 대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형이상학적 측면에서 노장의 현학(玄學)을 종합하여 새로운 시대와 사회에 맞는 유학을 건설하였으니 그것이 곧 성리학(性理學)이다. 성리학의 발생은 이미 그 시대의 인지가 선진의 실천유학인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윤리현상을 인심에 기초한 데서 비롯됨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선진유학에서는 인심이 선이라는 심선설(心善說)에서 성선(性善)을 말하고 있다. 본래 심선(心善)인 인심이 어떻게 하여 선·악으로 나누어지며, 인간이 선을 실천하기 위하여 어떠한 행위의 준칙을 삼아야 하며, 그때 마음을 어떻게 수양하여야 하는 문제는 아직 심화되지 못했다. 따라서 성리학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주돈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선하(先河)로 본체론을 건립하고, 그 후 정이의 이(理)의 개념을 도입하여 주희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확립한다. 주희(朱憙, 1130~1200)를 흔히 주자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것은 존칭이다. 주희는 북송의 여러 유교 사상들을 총합·정리하여 체계화된 사상 구조를 완성했다. 주희의 집대성은 사상의 면에 있어서, 그야말로 대심포니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진유교·한당유교·노장·불교·도교 등 이전의 모든 사상체계가 주희의 사상 속에 녹아 들어갔다. 고려 말에 사회개혁사상으로 등장한 성리학은 조선의 개국과 함께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확립되었다. 조선 중기의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성리학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여러 학문에 능통했던 그는 주자의 성리학을 뛰어넘어 독자적인 해석을 내놓는다. 먼저 성리학에서는 이(理)와 기(氣)가 모여 우주 만물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쉽게 이는 본질, 기는 변수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물을 예로 들자면 H2O 자체는 理, 물의 모양을 결정하는 그릇은 氣가 되는 것이다. 이이는 주자의 주장을 한 단계 발전시킨 퇴계 이황과 달리 독자적인 해석을 보여 준다. 성리학에서는 이와 기를 분리해 생각하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기본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이는 여기에서 벗어나 이와 기는 ‘둘 같이 보이지만 사실 하나’라 주장했다. 이를 ‘일이이 이이일(一而二 二而一)’이라고 한다. 이이는 이는 형체가 없고, 기는 형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형체가 없는 이는 통하고, 형체가 있는 기는 국한 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이통기국(理通氣局)’이라고 한다. 이는 형체가 없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고, 기는 형체가 있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다(發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기가 움직일 때, 기에 타서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이를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l라고 한다. 주자의 이기이원론의 이(理)와 기(氣)는 불교 화엄경의 우주론인 4법계 중, 이법계(理法界;· 본질계)와 사법계(事法界; 현상계)의 이론을 원용한 것으로 보이며,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은 4법계 중, 이사무애법계(理事无涯法界, 현상계와 본질계가 걸림없이 통하는 세계)의 이론을 원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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