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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의 비교론적 고찰 (6)
정석준 종교연구가,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2년 06월 23일(목)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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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그러나 중생들의 괴로움이 어찌 이 4가지, 8가지만 되겠는가? 중생의 번뇌가 8만4천이라면 괴로움도 8만4천 가지이며, 8만4천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인 의미로써 한량없이 많다는 뜻이다. 이처럼 우리의 괴로움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가? 불교가 단순히 인생을 괴로움이라고 말한다면 불교는 하나의 철학이나 사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을 증득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불교는 철학이면서 고등종교인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으로 고(苦)·집(集)·멸(滅)·도(道)의 4가지 진리의 가르침(四諦)을 펴셨다. 고제란 앞서 말한 인생은 괴로움이라는 진리이다. 집제란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진리이다. 부처님께서는 “후유를 일으키고 기쁨과 탐심을 수반하며, 이르는 곳마다 그것에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괴로움의 원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괴로움의 원인으로 지적된 것이 갈애이다. 갈애란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강렬하게 타오르는 인간의 욕망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부처님께서는 욕망,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부처님께서 배격한 것은 ‘그릇되고 지나친 욕망’이었다. 멸제란 괴로움이 없는(사라진) 진리를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갈애를 남김없이 멸하고 버리고 벗어나서 더 이상 집착하지 않을 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하셨다. 도제란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에 대한 진리인데, 부처님께서는 그 방법으로 중도(中道), 즉 8정도(八正道)를 제시하셨다. 8정도는 정견(正見, 바른 견해)·정사유(正思惟, 바른 생각)·정어(正語, 바른 말)·정업(正業, 바른 행위)·정명(定命, 바른 생활)·정정진(正精進, 바른 노력)·정념(正念, 바른 기억)·정정(正定, 바른 정신통일)을 말한다. 이와 같이 불교의 인생관은 인간의 삶을 괴로움(苦)으로 보고, 그러한 괴로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영원한 자유와 행복의 세계로 가는 것이라고 하겠다. 5. 내세관(來世觀) (1) 기독교의 내세관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신의 피조물로 보았다.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신이 만들었다고 보았기 때문에, 사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때에도 남자는 남자의 육체, 여자는 여자의 육체, 그리고 유아로서 죽은 사람은 성인의 육체를 가지고 승천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천당에 가기도 하고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지만, 이때에 그렇게 가는 것은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도 따라서 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당에 갈 수 있는가? 구원(救援)의 문제에 있어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입장이 사뭇 다르다. 가톨릭에서는 전통적으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함께 선행을 실천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쳐 왔다. 그런데 루터는 “인간은 선행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신앙)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였고, 칼뱅은 “인간의 구제 여부는 전지전능한 신의 자의에 의하여 미리 예정되어 있다”는 예정설(豫定說)을 내세웠다. 16세기 초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반발을 계기로 벌어진 이 논쟁은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가 갈라서며 종교 전쟁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2) 불교의 내세관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마음은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서 윤회를 한다고 말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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