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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어떤 종교인가?(7)
정석준 종교연구가,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2년 04월 14일(목)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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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메시지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의 설교 요지는“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받으라.”(마태복음 1:15)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속히 오리라는 귀절은 구약에서는 1840곳, 신약에서는 300회 이상 되는데, 4복음서의 하나인 마태복음에 있는 것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않아서 인자가 오리라.”( 마10:23).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보는 자도 있으리라.”(마16:28) 이와 같이 예수의 재림은 그때 생존하던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있으리라고 언급한 한 구절이 아주 많이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예수의 재림은 그 시대를 살고 있던 그들의 생전에 이루어졌어야 했다. 재림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계시록에 기록된 것처럼 종말론적 선악의 투쟁이 절정에 달했을 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부에선 역사의 발전을 통하여 주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는 것을 재림으로 해석하는 자들도 있다. 계시록에는 재림의 시기에 대하여 땅위에는 큰 전쟁이 일어나고 천재지변(千變地異)이 나타나며 하늘과 땅이 모두 파괴되며 인류에게는 무서운 재앙이 내린다고 한다. 또 예수가 재림할 때에는 천사들의 나팔소리가 나고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땅 위에 태평 왕국을 세운다는 천년왕국설도 있고, 인류가 극한 고통 속에 빠진다고 하는 대환란설도 있어 각 사람의 견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과 말일의 대심판은 모든 정통 교파에서 굳게 믿고 의심하지 않는 중요한 교의이다. 말일심판이란 것은 모든 인간은 선악의 행위가 있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우주의 대주재자로서 또 심판자로서 공정한 보상을 준다는 것이다. 일곱째, 기독교는 부활과 영생의 종교이다. 부활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며, 기독교인의 삶의 궁극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부활이 없으면 십자가의 의미와 가치가 성립되지 않는다. 즉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고통과 허무의 표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에게 아무런 삶의 용기를 주지 못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린도전서 15:16~19) 이 말은 부활이 인생의 궁극 목적이요 기독교인의 삶의 목표가 된다는 말이다. 부활이란 죽었던 사람의 몸과 생명이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는 ‘생명의 부활’이요, 다른 하나는‘심판의 부활’이다. 생명의 부활이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무덤이 갈라지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가리키며, 심판의 부활이란 악인들이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기 위해 일시적으로 부활하는 것을 말한다. 신약성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통하여 명백하게 증거하고 있으며, 특별히 목격자들의 증언은 부활의 사실성을 입증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린도전서 15:4~8) 흔히들 인간들이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통속적이며 과학적 사고에 세뇌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이 허다하다. 그러나 부활 사건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신비적 능력에 속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여기엔 과학적 증명이나 논리적 증거가 필요 없다. 다만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라는 신앙고백이 있을 따름이다. 기독교의 종말론적 사건은 주의 재림이 있은 다음, 심판이 있고, 심판과 함께 의인의 부활이 있으며, 의인이 부활이 있은 후, 천년왕국의 영광이 있고, 천년왕국 후에 무궁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 천년왕국을 일반적으로 천년 동안 하나님의 나라가 왕성하고 번영할 것을 믿는 신앙에서 발로된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사실을 기초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가 다 지난 후 천년 동안의 안식이 있다는 것이 천년왕국의 개념이다. 여하튼 시간의 세계가 지난 다음 영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성서는 명백히 말하고 있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계시록 22:5) 기독교인의 삶이란 이러한 영원을 위하여 나의 유한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일회적이며, 유동적이고, 유한한 시간적 삶, 거기엔 고뇌와 고통과 허무가 있을 뿐이나, 그러나 영원을 위하여 십자가의 삶을 살아갈 때 부활의 승리와 함께 영원의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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