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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다른 점 (2)
정석준 종교연구가,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2년 02월 24일(목)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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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둘째, 가톨릭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여 완성된 교리를 근간으로 삼았는데, 그 핵심은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의지의 자유와 함께 선을 택하고 악을 버릴 힘을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는 이 선택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사람은 신의 은총을 사람에게 전달하는 불가결의 수단인 성사(聖事)를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기독교 개혁가들은 바울의 서간(書簡)에 입각한 성(聖)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리에 입각하여, 인간의 본성은 완전히 사악한 것이며, 선행을 할 수가 없고, 사람은 완전히 신에게 예속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원죄의 이론, 인간의 완전한 타락, 의지의 예속성 등에 바탕을 둔 보다 원초적인 기독교로의 귀환을 주장하여 성경에 명시되지 않은 교리나 의식을 반대하였다. 셋째, 가톨릭에서는 인간이 죄사함을 받으려면 먼저 사제에게 고해성사(告解聖事)를 하여야 하고, 사제가 하나님께 대신 용서를 빌어야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가 있으며,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에도 응답해 주신다고 주장하였다. 넷째,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가톨릭에서는 하나님을 믿고(영세를 받고) 선행을 하면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루터는 선행은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며, 인간은 신의 은총을 통해서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죄 많은 인간은 자신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의 사랑에 의해서 의로워진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하여 칼뱅은 인간의 구제 여부는 전지전능한 신의 자의에 의하여 미리 예정되어 있으며, 어떠한 인간행위로도 그것을 변경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도들이 현세의 생활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신은 선택받은 자에게 올바르게 살아갈 의욕을 심어 주었다. 왜냐하면 그는 신이 자기의 뜻을 실현시킬 지상에서의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택받은 자는 현세에서 물러나 조용히 신의 은총을 즐길 것이 아니라 신의 뜻을 완수하기 위한 성도로서 자기 자신과 이 세상 안에 있는 죄악과 싸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성도들은 스스로의 구제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세속적인 직업에 근면하게 종사해야 하며, 동시에 일상생활을 합리적으로 조직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교리는 당시 경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중산계층의 호응을 받게 되어 근대적 직업관과 생활윤리의 형성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슬람교의 교리적 근거 기독교 교리의 뿌리를 유대교에서 찾을 수 있다면 이슬람교는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그 교리적 근거를 발견한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가 궁극적으로 다 같은 바탕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이슬람교는 유대교와 기독교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유일절대자(唯一絶對者)로서의 인격적 신을 믿음으로써 시작된다. 또한 이슬람교는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왕국이 있음을 믿는다. 이런 점에서 이슬람교는 유대교보다는 기독교에 더 가깝다. 그뿐만 아니라 이슬람교는 유대교의 선택된 민족이라는 개념 속에 내포되어 있는 배타성·독선성을 배척한다. 하나님 앞에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며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마호메트의 가르침,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죽어서 하나님의 왕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종교의 보편성, 모든 인간의 평등함을 강조하는 점에서 이슬람교는 기독교와 같다. 그러나 이슬람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구현, 인류의 구세주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는 여러 예언자 가운데의 한 사람에 불과하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이슬람교가 이번에는 기독교보다 유대교에 가깝다. 이슬람교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한마디로 말해서 유대교와 기독교는 다같이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알지 못하고 전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이 위의 두 종교에서는 참된 계시를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짜 계시, 참된 계시는 오로지 예언자 마호메트를 통해서만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호메트는 ‘예언자의 봉인(the seal -of prophets)’을 뜻하게 된다. 마호메트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 중의 한 사람이지만 그 뜻을 결정적으로 전달하는 마지막 예언자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마호메트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가 절대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슬람교에서는 유대교의 기본적 텍스트인 ‘모세오경(모세五經)’이나 기독교의 핵심적 텍스트인 ‘신약성서(新約聖書)’를 정말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의 가르침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한 텍스트들이 하나님의 뜻을 다소는 보여주지만 그 뜻이 순수한 상태로 전달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참된 뜻은 마호메트에게 계시된 ‘코란(Koran)’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코란이라는 말은 ‘원래의 참된’ 것임을 뜻한다. 오로지 ‘코란경’ 만이 하나님의 원래적 뜻을 담고 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이슬람교도들은 오로지 그들 자신만이 절대적 진리를 전달받고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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