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 2026-09-21 20:02:48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전체기사
커뮤니티
공지사항
자유게시판
행사알림
회사알림
 
뉴스 > 칼럼
다시 쓰는 포석정(鮑石亭) 애가(哀歌)
포석정이 신라의 이궁이자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제(祭)를 행하던 신성한 곳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2년 01월 20일(목) 09:11
ⓒ 경북연합일보
칼럼=강병찬 본지 취재국장


경주 오릉에서 남산으로 가다 보면, 초입인 나정(蘿井)에서 1km 남짓 떨어진 곳에 포석정(鮑石亭, 사적 제1호)이 있다. 포석정은 남산의 정상부에서 길게 뻗어 나온 포석골의 맨 아래 평평한 곳에 널찍하게 터를 잡았다. 정상부로 이어지는 넓고 완만한 등산로 주변에는 솔숲이 울창하다.
포석정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경주 남산에서 이름, 역사, 경관을 견줘 그 신비로움이 비길 데가 없다. 그러나 요새 관광 취향이 화려하고 거창한 곳 위주로 바뀌면서 포석정의 이미지는 예전보다 상당히 퇴색됐다.
그런데 최근 문화계에서는 포석정이 신라의 이궁이자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제(祭)를 행하던 신성한 곳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했던 곡수거(曲水渠)는 당나라의 정원을 참고해 만들었다고 한다. 당나라 사신들을 위한 연회를 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궁인 반월성에서 외교적 연회를 자주 여는 것은 안보와 국격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포석정이 신라 이궁(離宮, 행궁 혹은 별궁)이라는 최근의 인식은 그 일대에 대한 1998년도 발굴조사가 뒷받침한다. 발굴조사 당시 그곳에서는 제사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신라시대의 그릇들이 상당히 출토돼 세간을 놀라게 했다. 문헌상으로 동국통감(東國通鑑)에는 포석정을 ‘반월성 남쪽에 있었던 신라 왕실의 이궁(離宮)’으로 분명히 적혀 있다.
그런데도 포석정이 신라의 왕족과 귀족들이 궁녀들을 데리고 사시사철 유상곡수연을 즐기던 환락의 장소라는 고정관념은 변하지 않고 있다. 각종 유물이 출토돼 실체가 드러났고, 문헌이 뚜렷이 남아 있는데도 유적의 참된 의미가 재정립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포석정은 63개의 돌을 이어붙인 ‘전복 모양의 돌 홈을 이어붙인 수로’만이 아니다. 이제까지 보존돼 온 신라시대의 돌 홈이 귀중한 문화재인 것은 사실이지만 ‘돌 홈 수로’, 이른바 ‘곡수거’는 이궁을 위한 부대시설일 뿐이다. 정자(亭子) 역시 이궁을 최대한 좁혀서 격하한 표현이다. 부대시설로써 주된 시설과 기능을 대체해 장소적·개념적 정의를 내리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신라 이궁은 제사, 방어, 휴양, 연회 등 국가와 왕실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포석정은 남산의 장엄한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포석골에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천혜의 요새다. 화랑세기에는 포석정을 ‘포석사(鮑石祠)’로 일컫는 것으로 보아 열사(烈士)를 모신 사당이며, 귀족 자제들의 혼례 장소로 사용된 성소가 분명해 보인다.
신라 이궁의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넓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민가가 들어서 있는 포석정지 주변을 폭넓게 조사해보면, 방어를 위한 높은 담장(혹은 성벽), 해자(垓子), 전각 등을 비롯해 병장비와 유골 같은 흔적이 추가로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문화재 당국은 이제라도 포석정을 ‘신라 돌 홈 보존’ 수준에서 벗어나 ‘신라 이궁 복원’ 차원에서 그 일대를 대대적으로 재조사해야 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포석정에 대한 정의를 ‘신라 이궁’으로 바로잡고, 대한민국 제1호 사적의 참된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
포석정의 참된 의미를 확인하고 나면,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환락을 즐기다가 신라가 패망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경애왕은 후백제군의 침략 소식이 전해지자 후고구려에 지원군을 요청해 놓고서 애타게 기다리는 중이었다.
경애왕(景哀王, 재위 924∼927)에 이어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敬順王, 재위 927~935)도 자신에게 왕위를 넘겨준 견훤을 배신한 후 어쩔 수 없이 고려에 항복해 신라의 1천 년 종묘사직(宗廟社稷)을 송두리째 바쳤다는 부분도 다른 해석이 나온다. 경순왕은 고려에 불리한 위치에서 굴복하거나 조건 없이 항복한 게 아니라 대등하게 두 국가의 통합을 이뤘다.
국가 통합으로 신라 왕족은 고려 왕실과 인척 관계를 겹겹이 맺었다. 더 나아가 군부 위주 정권이었던 고려 조정에 신라 관료들을 대거 참여시킴으로써 신권을 장악해 권력을 분점했다. 고려 인종 때 삼국사기를 쓴 경주 출신 김부식(金富軾, 1075~1151) 형제의 경우를 보면, ‘동경(경주)파’가 ‘서경(평양)파’인 묘청(妙淸)을 진압하고, 조정의 실권을 거머쥐었다.
포석정의 참된 의미를 알고 나면, 경애왕은 포석정으로 피신했으나 적에게 붙잡혔고, 적장 앞에서 위엄을 잃지 않고 장렬하게 자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애왕비도 왕을 따라 스스로 목을 맸다. 더불어 후삼국 통일의 과정과 의의도 후삼국 통일을 향한 국가대통합으로 이해된다. 천년왕국 신라의 멸망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날 참담한 비극의 역사, 포석정 애가(哀歌)는 새롭게 써져야 한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 Copyrights ⓒ경북연합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경주시, 미래차 산업 전환 가속페달
“구미 AIDC, 지역 건설사 참여 확대”
월성본부, 항공안전법 개정 현장 홍보
안동 감로사과 유통망 넓힌다…지역특화품종으로 육성
주낙영 경주시장, 동국대~현곡 상구간 도로개설 현장 점검
경북도, 환경오염사고 전방위 대응 분야별 TF 가동
복지도시 달성, 통합돌봄 본격 가동
봉화 청량산 절경, 수묵화로 만난다
천년고도 가을밤 빛난다…경주국가유산야행 준비 ‘착착’
경주시 민선9기 공약사업 실행 고삐 죈다
최신뉴스
영덕 강구해상대교 22일 개통…대게거리 교통난 숨통  
김천에 3470억 규모 ‘반도체 유리기판’ 공장 세운다  
'에너지자원公 유치전' 경주 끌어들인 울산  
영주시, 대학생 학자금대출 이자 지원  
상주 상산교 재가설 완료 23일 개통  
예천박물관, ‘올해의 박물관·미술관상’ 우수 출판물상 수  
문경향교, 추기 석전대제 봉행  
“기운 없으면 풍기로” 인삼축제 개봉박두  
‘N% 성과급’이 불러온 노·노 갈등  
달성 사문진의 밤, 100대 피아노 선율로 물든다  
군위 부계서 펼쳐진 전통예술 향연  
한미 우호협력 관계 지속 발전 강조  
대구시의회, 중학교 학부모 교육현안 청취  
서대구역 일원 2광장 조성사업 추진 본격화  
추경호 대구시장 “서문시장 4지구 연내 착공”  

신문사소개 편집규약 윤리강령 고충처리인제도 개인정보취급방침 제휴문의 광고문의 구독신청 기사제보 저작권 문의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경북연합일보 / 사업자등록번호: 505-81-82281/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화랑로 32 (성건동)
발행인.편집인: 정진욱 / mail: sp-11112222@daum.net / Tel: 054)777-7744 / Fax : 054)774-3311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가0003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진욱
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28,292
오늘 방문자 수 : 62,766
총 방문자 수 : 42,780,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