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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베트남 패망의 교훈 (2)
정석준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12월 23일(목)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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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지난 호에 이어) 시민·종교단체를 좌익이 장악하였고, 한편 이 무렵 자유 베트남에서는 천주교의 짠후탄 신부, 불교계의 뚝드리꽝 등이 모여서 ‘구국평화회복 및 반부패세력’이라는 단체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었다. 이 산하에 사이공대학 총학생회, 시민단체들이 연합하여 일종의 시민연대를 구성하고, 반부패운동에 나섰다.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미군과 한국군이 철수하자 사이공에는 100여 개의 애국단체, 통일운동단체들이 수십 개의 언론사를 양산하여 월남의 좌경화에 앞장섰다. 목사·승려·학생, 그리고 좌익인사들이 한데 뒤섞여, 반전운동·인도주의운동·순화운동 등,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운동단체들을 총동원하여 티우정권 타도를 외치고, 반정부 시위를 벌렸다. 1975년의 자유 베트남은 이들 100여 좌익단체의 선전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이다. 당시 자유 베트남 이대용 공사는 「자유 베트남 패망」 회고록에서 “월맹군의 움직임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고, 티우 대통령에게 면담을 신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티우 대통령은 허허 웃으며 지금 우리나라 정규군이 58만 명입니다. 또 미국과의 방위조약이 시퍼렇게 살아있고, 월맹도 북폭으로 거덜이 난 상태인데, 저들이 침략할 힘이 남아 있겠습니까?”하며 완곡하게 거절하였다고 한다. 티우 대통령은 확고한 반공 지도자였지만 평화에 눈이 멀어 유비무환을 잊었던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월맹은 경제가 허약하고 식량과 물자 부족이 심각해 조만간 붕괴될 체제에 불과한 것으로 우습게 보았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언론과 지식인들이 국가안보와 반공, 국가 정통성 수호를 외치고 있지만, 말과 글과 구호로 무장한 좌파인사들이 무차별 공세를 펼침으로써 ‘말없는 다수’들이 침묵하는 상황도 25년 전 월남과 다름이 없다. 자유 베트남군은 곳곳에서 패퇴하며 밀리기 시작했다. 월맹군에게 허를 찔린 자유 베트남군은 전투다운 전투 한 번 못한 채 후퇴만 거듭하다가 결국 50%의 병력이 붕괴·해산했다. 3월 26일 다낭이 함락됐고, 18개 사단이 사이공을 향해 무인지경을 달리듯 파죽지세로 남하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유령군인’과 ‘꽃 군인’들은 가족과 함께 배와 비행기로 자유 베트남을 탈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침 후 한 달이 지날 때까지도 미국은 ‘대월방위조약’을 이행하지 않고 있었다. 4월 29일 월맹공산군 14개 사단이 사이공을 포위했다. 사이공에는 패잔병만 남아 있었다. 레웬비 장군은 조국의 패망을 비통해하면서 권총으로 자결, 나라와 운명을 함께 했다. 4월 30일 정오, 월맹 공산군 제2군단은 사이공 시내로 진격하여 탱크부대가 자유 베트남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위치한 독립궁을 점령했다. 월맹군을 압도한다고 자랑하던 자유 베트남군은 월맹군에 의해 너무도 허무하게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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