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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베트남 패망의 교훈 (1)
정석준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12월 16일(목) 18:18
ⓒ 경북연합일보
자유 베트남(월남)과 한국은 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더불어 해방을 맞이하였고, 분단·혁명·전쟁으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1975년 자유 베트남은 북 베트남(월맹)에 의해 지구상에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월터 사프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현재의 한국 정세를 자유 베트남에 비유하면서, 1975년 자유 베트남과 같은 위험한 정국에 처해 있다는 경고성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 위정자들의 각별한 주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자유 베트남의 패망과정
우리와 자유 베트남의 역사는 너무나 닮은꼴이 많다. 전쟁에 지친 미국이 월맹과 휴전을 위한 비밀협상에 몰입한 것은 1968년 5월 10일이다. 
그 무렵 미국은 연간 495억 달러(1968년), 508억 달러(1969년)를 퍼부었고, 미군 병력도 53만 6,000명을 파병할 정도로 전쟁의 절정을 이루던 시기이다. 미국과 월맹이 파리에서 비밀평화회담을 진행 중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유 베트남 내부에서는 국론이 두 갈래로 갈렸다. 여당은 강력한 반공정책을 주장하며 평화회담 참여 거부를 주장한 반면, 야당은 앞다투어 포용정책을 들고 나와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회담 참여를 지지했다. 고민에 빠진 월남 정부에서는 어쩔 수 없이 회담 테이블에 나가야 했고, 1973년 1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5년여 협상 끝에 베트남전을 종식하는 역사적인 휴전회담이 열렸다.
이 휴전의 담보를 위해 키신저는 월맹에 40억 달러(20억 달러는 미국이 직접 원조, 20억 달러는 국제은행 IBRD 차관)의 원조를 제공, 이것으로 피폐한 월맹의 경제 재건을 돕기로 하고, 교전 당사국인 미국·자유 베트남·베트콩(베트남 임시혁명정부) 등이 서명했다. 
미 국무장관이었던 키신저는 보다 확실한 휴전을 담보하기 위해 휴전감시위원단인 케나다·이란·항가리·폴란드 4개국을 서명에 참여시켰다. 이리하여 4개국 250명으로 구성된 휴전감시위원단은 하노이와 사이공, 그리고 휴전선을 감시하게 되었다.그리고 자유 베트남과도 방위조약을 체결, 이제 미군은 철수하지만 월맹이나 베트콩이 휴전협정을 파기하면, 즉각 해공군력이 북폭을 재개하고, 자유 베트남 지상군을 지원하기로 굳게 약속했다. 
이처럼 철저한 제도와 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에 키신저는 주월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휴전제가 최소한 10년은 갈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수년간 미국의 골칫덩어리였던 베트남전이 휴전을 맞게 되면서 전 세계에는 평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그러나 결국 이 생각은 착각이었다. 이는 지금도 북한이 견지하고 있는 대남전략과 단 한 치의 차이도 없다. 총 인구의 90.5%는 자유 베트남이 지배하고 있었고, 나머지 중 5%는 낮에는 자유 베트남, 밤에는 공산측이 지배하는 경합지역, 그리고 4.5%는 공산 측 지배하에 있었다. 
휴전 무렵, 월맹은 오랜 기간의 전쟁으로 인해 매년 80만~100만 톤의 식량부족,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휴전협정 이전부터 숱한 공산 프락치들이 자유 베트남 곳곳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웬후토가 1962년 1월에 창당한 인민혁명당에서 침투시킨 조직원들이었다. 자유 베트남 패망 당시 자유 베트남에는 공산당원 9,500명과 인민혁명당원 4만 명, 즉 천체 인구의 0.5% 정도가 자유 베트남 사회의 저층에서 밑뿌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1969년 대선에서 차점으로 낙선한 쭝딘쥬와, 당시 모범적인 도지사로 평판이 자자했던 녹따오를 위시한 많은 정치인, 관료들이 모두 공산당 푸락치 였음이 알려진 것은 자유 베트남 패망 후의 일이었다. 
반면 자유 베트남에서는 군사 구테타가 벌어질 때마다 대공 전문가들이 쫓겨나는 바람에 자유 베트남 대공기관과 정보기관은 형해(形骸)만 남아 버렸다.
한나라를 망하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보다도 그 나라의 정보기관부터 무력화 시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정보기관과 대공기관이 정권의 부침에 따라 평지풍파를 겪으면서 결국에는 간첩하나 못 잡는 이빨 빠진 고양이로 전략한 사실을 너무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 베트남 패망 당시 의적(義賊)이 아니라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무너지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오랜 전쟁 후에 온 휴전 체재에서 결국 그 믿음이 국방을 소홀하게 하였고, 내부적으로는 극심한 정쟁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당시 자유 베트남 정규군은 58만 명이었는데, 이 중 10만 명이 뇌물을 주고 비공식 장기휴가를 받아 대학에 다니거나 취업하고 있었다. 이처럼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군인들을 가리켜 당시 자유 베트남에서는 ‘유령군인’, ‘꽃군인’이라 불렀다.
문제는 지도층의 부패였다. 티우 대통령의 사위가 군에 입대했는데, 그는 이름만 군적에 둔 채 외국 유학을 떠나 버렸다. 다른 고관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지도층 아들들은 입대 영장이 나오면 일단 입대한 다음, 뇌물을 써서 선진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일선의 군인들은 “저 따위 썩은 정권과 나라를 위해 내가 목숨을 바쳐야 하는가?” 하며 전의를 상실했다.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가 퍼져나가자 공산군에 대한 경계심도 사라져 버렸다. 
이것이 월등히 높은 경제력과 막강한 화력을 가졌던 자유 베트남이 식량부족으로 고민하던 월맹군에게 허수아비처럼 붕괴된 가장 큰 원인이었다.  (계속)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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