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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의 대표작『등신불』과 김교각스님 (1)
정석준 동리목월문학관 상주작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11월 10일(수)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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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김동리의 대표작 ‘등신불’과 다솔사 동리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김동리(金東里)의 「등신불」은 1961년 11월 사상계(思想界) 101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심오한 불교 사상의 일면을 보여준 작품으로서 김동리의 대표적인 단편소설이다. 김동리는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백로」가 입선되었고, 이듬해 단편 「화랑의 후예」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장차 문인으로서의 꿈을 펼치고자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나 서울에서 생활하기가 어려워지자 조용한 곳에서 글을 쓰고 싶어 큰형인 김범부가 일경에 쫓겨 숨어 지내고 있는 경남 사천의 다솔사로 찾아가서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1937년, 다솔사에서 쓴 「산화」가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되어, 3대 일간지 신춘문예에 내리 당선된 동리는 일약 문단의 스타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37년 3월 다솔사에서 광명학원(원장 최범술)을 설립하자 학동을 가르치는 교사로 근무하게 된 동리는 근무가 끝나면 다솔사로 올라와 적멸보궁 옆 요사체에서 소설을 쓰며 보냈다. 1937년 가을, 김동리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분신 공양’에 대한 이야기다. “만해 한용운 씨가 다솔사에 왔을 때의 일이다. 연락을 받고 다솔사로 달려갔다. 절 큰 방에는 만해와 내 백 씨(범부), 주지 석란사(최범술)가 앉아 있었다. 만해가 무슨 이야기 끝에 “범부, 우리나라 승려 중에 분신 공양한 분이 있소?”하고 백 씨에게 물었다. “형님이 못 보신 걸 난들 어떻게 알겠소.” 백 씨의 대답이었다. “분신 공양이 무엇입니까?” 내가 물었다. 석란사가 설명해주었다. 나는 심히 충격을 받았다. 김동리의 수필집에 나오는 글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 김동리는 그날 이후 보안암으로 가는 오솔길을 오가며 분신 공양 이야기를 소재로 소설 창작을 구상했다. 오솔길을 거닐며 소설의 줄거리를 엮어내고 요사채로 돌아와 원고를 집필, 소설 「등신불(等身佛)」이 탄생하게 된다. 이곳에서 탄생한 그의 대표작 「등신불」은 1961년 11월 사상계 101호에 발표되었다. 그리고 1963년 정음사에서 간행한 단편집 『등신불』에 수록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일제강점기 말기 학병으로 끌려간 ‘나’는 중국의 북경을 거쳐 남경에 주둔해 있다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하여 탈출한다. 그리고 불교학자인 진기수에게 식지를 잘라 혈서를 써 구원을 청한다. 결국, 그의 도움으로 정원사(淨願寺)라는 절에 머물게 된 ‘나’는 그곳에서 등신대(等身大)의 결가부좌상(結跏趺坐像)인 금불상을 접하게 됨으로써 경악과 충격에 빠져든다. 이 등신불은 옛날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마침내 성불한 만적(속명은 기)이란 스님의 타다 굳어진 몸에 그대로 금물을 입힌 특유한 내력의 불상이다. 만적은 어머니의 학대로 집을 나간 이복형 사신을 찾아 나와 중이 되었는데, 어느 날 문둥이가 되어 있는 사신을 만나게 된 뒤에 충격을 받아 소신공양을 하게 된다. 만적이 몸을 태우던 날 여러 가지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 일어나 새전이 쏟아지게 되며, 이 돈으로 타다 남은 그의 몸에 금물을 입혀서 등신불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등신불은 거룩하고 원만한 여느 불상과는 달리, 고개와 등이 굽었을 뿐만 아니라 우는 듯, 웃는 듯, 찡그린 듯, 오뇌와 비원이 서린 듯 한 가부좌상으로서 보는 사람의 가슴을 움켜잡는 듯 한 감동과 함께 전율과 경악을 느끼게 한다. 원혜대사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는 이 불상과, ‘나’의 잘라진 식지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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