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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위기, 미래와 현재의 충돌
김수종 전 한국일보 주필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10월 17일(일) 18:22
ⓒ 경북연합일보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그런데 10월 날씨가 왜 이리 궂을까. 구름이 잔뜩 하늘을 덮고 비 오는 날이 잦다. 기온도 서늘하다. 지구온난화를 염려해야 할 판인데, 올겨울엔 오히려 혹한이 심술을 부릴 것만 같다.
겨울 하면 난방비가 떠오른다. 겨울을 목전에 두고 에너지 공급부족으로 지구촌이 난리다. 9월 들어 천연가스 석유 석탄값이 치솟고, 연이어 전기료와 석유화학 제품 등 물가가 뜀박질 하고 있다. 이 에너지 쇼크의 파장이 올 겨울 한국의 소비자에게도 몰려올 게 틀림없다.
천연가스 가격은 올해 유럽에서 250% 이상, 미국에서 100% 이상 뛰었다. 올해 초 40달러 이하로 거래되던 유가는 7년만에 최고가인 배럴당 80달러까지 치솟았다. 월가의 골드만삭스 분석가는 연말까지 석유값이 10% 더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후변화를 막겠다고 세계 각국이 ‘2050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재생에너지를 더 생산하고 탄소배출을 줄이자고 야단법석인데 화석연료 값이 화난 듯이 치솟는 이 상황이 보통 사람들에겐 영 혼란스럽다.
에너지 부족의 파장은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증폭됐다. 일단 팬데믹으로 침체됐던 경기가 풀리기 시작했고, 겨울 난방철을 앞두고 에너지 수요가 늘었다.
공교롭게도 편서풍 바람을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영국 독일 등 서유럽에서 바람이 예전처럼 강하게 불지 않았다. 에너지 공급의 20~40%를 차지하는 서유럽국가들의 풍력전기 생산이 급감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소비가 늘어났다. 전기값이 뛸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특히 기후변화 시대에 탄소배출이 석탄의 절반밖에 안 되는 천연가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건 세계적인 추세다. 천연가스 가격 상승 요인은 유럽의 수요 증가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천연가스 소비증가와 맞닿아 있다.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저탄소 에너지에 대한 관심 증폭으로 천연가스에 무게를 두면서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크게 늘었다. 천연가스 가격 폭등은 동시에 석유와 석탄가격을 끌어 올렸다.
에너지 공급 쇼크로 파장이 가장 심한 곳은 영국과 중국이다. 영국은 브렉시트로 트럭 운전사가 크게 부족해서 에너지를 수송하지 못하자 주유소마다 자동차가 긴 줄을 늘어서고 공장이 멈춰서는 사태가 벌어졌다. 영국인들은 1970년대 말 노조파업으로 전 산업과 공공서비스가 마비되었던 ‘불만의 겨울’을 떠올린다.
중국의 에너지 파동은 호주와 정치적 갈등으로 증폭되었다. 중국은 호주의 중국체제 비판에 대해 무역보복을 했다. 특히 호주 석탄수입을 규제했다. 이런 상태에서 세계적 에너지 공급 부족 사태가 중국을 강타한 것이다. 제조업 국가 중국은 화력발전소를 돌릴 석탄과 천연가스가 모자라 전력난으로 곳곳에서 산업이 마비되는 등 홍역을 치르고 있다. 중국은 항구에 묶여 있는 호주석탄을 부랴부랴 하역하는가 하면 폐광했던 탄광을 재개하는 등 석탄확보에 매달리고 있다. 심지어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석탄을 밀수입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에너지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세계는 그 공급줄을 쥐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미국을 바라보게 된다. 이들 빅3(Big Three)가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밀고당기며 증산이나 감산을 통해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맞추든가 변화시켜 나간다. 지금은 유럽과 중국이 러시아의 가스공급을 절실히 기대하고 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일단 산유국들에게 증산을 촉구한다. 그러나 산유국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증산에 매우 조심스럽다. 자칫하면 모처럼 올라간 유가가 떨어져서 국가재정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될수 있으면 유럽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한다. 독일로 천연가스를 보내는 가스관 ‘노드스트림2’ 조기 개통을 이 기회에 추진하려 할 것이다.
미국은 비교적 여유가 있다. 휘발유값과 천연가스 값이 올라 소비자들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쉐일 오일 및 가스개발로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복귀하여 국제에너지 질서 정립에 전략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사실 에너지 값이 오를수록 미국의 에너지 산업에겐 좋다.
하지만 미국의 에너지 산업 분위기는 미묘하다. 바로 ‘2050년 넷제로’선언으로 탄소배출은 줄이고 재생에너지 생산을 장려하는 ‘클린에너지 정책’을 펼치는 와중에 에너지 공급부족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미국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미국의 많은 에너지 기업들이 석유와 가스채굴 투자에 신중하다. 블랙락을 비롯하여 거대 투자회사와 각종 연기금 및 금융기관들이 탈탄소 정책에 따라 화석연료 프로젝트 투자를 줄여나가고 있다. 정부의 독려가 금방 생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석연료에서 후퇴하는 투자 전략을 펴다가 갑자기 화석연료로 프로젝트를 바꾸는 것이 장기계획에 의해 움직이는 기업에게 감당하기 쉽지 않은 변신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온통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정책으로 떠들썩하고 유럽 중국 미국의 산과 바다엔 풍차와 태양광 패널로 뒤덮이다시피 하고 있지만 이번과 같은 에너지 쇼크에 대응책이 선듯 나오지 않고 있다. 앞으로 10년간 에너지 가격 인플레가 이런 방식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에너지 정치게임에 통달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이런 상황을 계산하며 가스 공급줄을 조절할 것이다.
미래의 위기와 현재의 위기가 미묘하게 충돌하고 있다. 에너지전환 시대의 불확실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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