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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의「완화삼(玩花衫)」과 박목월의「나그네」(1)
정석준 동리목월문학관 상주작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10월 14일(목)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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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동리목월문학관은 1955년에 출간된 박목월의 첫 개인 시집『산도화』를 소장하고 있다.『산도화』에는 조지훈이 써 준 발문이 있는데, 그 가운데 에도 둘의 첫 만남에 관한 얘기가 들어있다. 내가 목월을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이른 봄이었다. 그 전해 가을에 나는 절간에서 일본의 진주만 공격 소식을 들었고『문장』폐간호를 받았다. 그해 겨울 과음한 탓으로 빈사의 몸이 되어 서울로 와서 소위 『국민문학(國民文學)』이 발간된 것을 보았고 몇 달을 누워 있다가 이듬해 봄에 조선어학회의『큰 사전』편찬을 돕고 있을 때였다. 일본서 돌아오는 초면의 시인이 하나 화동에 있는 조선어학회를 찾아와서 오는 길에 목월을 만나고 왔다는 말을 전했었다. 그때까지 경주를 못 보았을 뿐 아니라 겸하여 목월도 만나고 싶기도 해서 나는 그 이튿날 목월에게 편지를 썼다. 무슨 말을 썼는지 지금은 모르지만 매우 긴 편지였다는 것만을 기억하고 있다. 얼마 뒤에 목월에게서 답장이 왔었다. 그 짧으면서도 면면한 정회가 서려 있는 편지는 다음과 같았다. “경주박물관에는 지금 노오란 산수유 꽃이 한창입니다. 늘 외롭게 가서 보곤 하던 싸늘한 옥적(玉笛)을 마음속에 그리던 임과 함께 볼 수 있는 감격을 지금부터 기다리겠습니다. 오실 때 미리 전보 주시압.” 이 짧은 글을 받고 바로 진보를 쳤었다. 철에 이른 봄옷을 갈아입고 표연히 경주에 내린 것은 저녁 어스름 분분한 눈송이와 함께 봄비가 뿌릴 때였다.”(산도화 발문) 박목월의 수필집 ‘지훈과 나’라는 수필에서도 조지훈과 박목월의 첫 만남을 찾아볼 수 있다. 이제 2차 대전도 무르익고, 또한 그 종말이 가까워지게 되었다. 일제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지막 발악을 했다.『문장』은 폐간되고 우리에게는 글을 발표할 자리뿐만 아니라 우리글 그 자체도 빼앗기고 ‘세기의 심연’은 완전히 ‘밤’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꾸준히 작품을 썼다. 그것으로써 나를 달래고 위로하고, 또한 시를 쓰는 그 생활 안에서 삶의 등불을 밝혔던 것이다. 이 고독한 작업에서 빚어진 작품들을 몇몇 친구에게 돌려 보였을 뿐이다. 그 시대의 절망적인 환경이 나를 향토적인 세계로 몰아넣고 그것에 깊은 애착을 갖게 하였으며 그 세계 안에서 나를 길러준 것이다. 그 무렵에 사귄 시우(詩友)로는 지훈 한 사람뿐이었다. 지훈도 사귀었다기보다 만났다 함이 적합한 표현일지 모른다. 하루는 서울에 있는 지훈에게서 두툼한 봉서가 왔다. 지훈의 그 자획 하나를 소홀히 하지 않는 단정하면서도 멋있는 글씨로 엮은 긴 사연의 편지를 받았던 것이다.『문장』에 추천 받은 시우와 서신 왕래를 갖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본인이 그 당시 내가 살던 경주에 나타났다. 그의 밤물결 같은 장발을 바람에 휘날리며 산을 건너다보던 모습과 후리후리한 키에 희멀겋게 시원한 얼굴과 장자풍이 있는 너그러운 몸가짐. 우리는 어두운 여관방에서 날이 새는 줄 모르고 시를, 시대를 얘기하고 서울 시단 소식을 들었다. 암흑의 시대를 절망 속에서 살아가던 두 시인은 이렇게 건천역에서 처음 만난 뒤 따뜻한 문학적 동지가 되었다. 둘은 폐허의 고도 경주의 여관에서 거의 매일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문학과 역사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지훈은 시인이라는 자기 존재를 귀히 여기는 목월이 고마웠고, 무엇보다 그가 발표할 수도 없는 시를 써 두고 있는 점이 믿음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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