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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의「청노루」와『청록집』
정석준 동리목월문학관 상주작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10월 07일(목)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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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 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박목월/ 청노루)
이 작품을 쓸 무렵에 내가 희구한 것은 나의 안정에도 안개가 서리고, 흐릿한 핏발이 물들어 있지만 젊을 때는 그래도 ‘핏발 한 가닥 서리지 않은 눈’으로 님을 그리워하고 자연을 사모했던 것이다. 또한 그런 심정으로 젊음을 깨끗이 불사른 것인지 모르겠다. 어떻든 그 심정이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을 그리게 하였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 ‘청노루’가 과연 존재하느냐 하는 의문을 가지는 분이 있었다. 물론 푸른빛 노루는 없다. 노루라면 누르스름하고 꺼뭇한 털빛을 가진 동물이지만, 나는 그 누르스름하고 꺼뭇한, 다시 말하자면 동물적인 빛깔에 푸른빛을 주어서 정신화된 노루를 상상했던 것이다. 참으로 오리목 속잎이 피는 계절이 되면 노루도 ‘서정적인 동물’이 될 것만 같았다. 또 청운사나 자하산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어느 해설서에 ‘경주 지방에 있는 산 이름’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한 것을 보았지만, 이것은 해설자가 어림잡아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기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완전히 내가 창작한 산명이다. (중략) ‘청운사’나 ‘자하산’은 내가 명명한 상상의 세계의 산이요, 절이다. (목월 시인의 자작시 해설)
동리목월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청록집』은 1946년 을유문화사(乙酉文化社)에서 발행하였다. 박목월 편에 ‘임’·‘윤사월(閏四月)’·‘청노루’·‘나그네’ 등 15편, 조지훈 편에 ‘고풍의상(古風衣裳)’·‘승무(僧舞)’·‘완화삼(玩花衫)’ 등 12편, 박두진편에 ‘묘지송(墓地頌)’·‘도봉(道峰)’·‘설악부(雪岳賦)’ 등 12편으로 모두 39편이 수록되어 있다. 『청록집』이라는 제명은 박목월의 시「청노루」에서 따온 것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동인지나 유파의식(流派意識)을 바탕으로 발행된 것은 아니다.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 사이에『문장(文章)』지를 통하여 데뷔한 여러 시인들 가운데서, 광복 직후에 서울에서 만날 수 있었던 세 사람이 모여 발간한 시집인 것이다. 박목월·조지훈·박두진 세 시인은 애초에 특별한 유파 의식을 바탕으로 공동 시집을 펴낸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들의 시에 함께 나타나는 소재의 뚜렷한 자연 지향성, 그리고 일제가 국어 말살 정책으로 숨통을 조이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말의 리듬과 토속적 아름다움을 잘 살려낸 점 때문에 세 시인은 공동 시집 발간 뒤 ‘청록파’로 불리게 된다. 알고 보면 세 사람은 이 합동 시집 한 권을 낸 것 외에는 특별히 행보를 같이한 적이 없다. 목월은 청록파 시인 중에서 가장 늦은 1940년 9월에 등단하였는데, 이 때 그는 정지용으로부터 “북의 소월, 남의 목월”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기성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북에는 소월이 있었거니 남에는 박목월이가 날 만하다. 소월의 툭툭 불거지는 삭주 귀성조(朔州龜城調)는 지금 읽어도 좋더니 목월이 못지않아 아기자기 섬세한 맛이 좋다. 민요풍에서 시로 발전하기까지 목월의 고심이 더 크다. 소월이 천재적이요, 독창적이었던 것이 신경 감각 묘사까지 미치기에는 너무나 ‘민요’에 시종하고 말았더니 목월이 요적(謠的) 뎃상 연습에서 시까지의 컴포지션에는 요(謠)가 머뭇거리고 있다. 요적 수사(修辭)를 충분히 정리하고 나면 목월의 시가 바로 한국 시이다.”(정지용) 목월의 시는 초기, 중기, 후기 시로 나뉘어진다. 초기 시는 자연과 향토적인 정서를 배경으로 본원적인 고향을 추구하는 시편들로, ‘윤사월’, ‘청노루’, ‘나그네’, ‘산도화’ 등이 그의 초기 시중 가장 많이 알려진 시들이다. 평화롭고 맑은 자연 속에서 잊혀져가는 고향을 찾는 순수한 정서로 창작된 그의 작품들은 가장 압축된 시형식속에 무한한 내용들을 내포하고 있어서 박목월 시인만의 독창적이고 특이한 시의 힘으로 볼 수 있다. 중기의 작품인 ‘난·기타’, ‘청담’에서 목월은 초기의 자연 친화에서 벗어나 인간생활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이 시기의 시들은 시인의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 뿐 아니라 시인 자신의 일상사를 소재로 하고 있어 초기 시들 ‘가정’, ‘밥상 앞에서’, ‘사력질’ 등은 변화에 고민한 박목월의 또 다른 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감동적인 작품들로,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시의 소재를 찾아 삶과 죽음의 허무함을 현실적 자연과 교감해 시적 아름다움으로 승화하거나 형상화한 시들이다. 그의 중기 시와 후기 시는 인생과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 문명비평적 경향 등은 시가 시대적인 상황과 독자와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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